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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02. 2021

길거리의 솟대

하동의 명교마을

솟대라는 것은 마을의 입구를 상징하는 우리 고유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솟대의 기원은 먼 지역 시베리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위대한 신수 앞에 긴 소나무 장대가 있고 그곳에서는 물오리 아홉 마리가 비상하듯이 표현했다. 시베리아 샤먼의 행사를 시작할 때 새의 모양이 있는 옷을 입었었다고 한다. 

이곳은 하동의 성평권역 배드리길이다. 입구에는 솟대가 있는데 새는 고구려의 삼족오,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단군신화에서도 신단과 신수가 결합된 신단수의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통로에 나무가 세워져 있었다. 솟대는 우리 문화유산의 미풍 양식으로서 관광객에게 관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일제 강정기에 고현면 이렀다는 이곳은 명교와 일기를 합쳐 명교리라 하였고 현재도 그렇게 불러지고 있다. 옛 하동의 읍기에 한다사때 이웃 마을에 사람이 살고 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솟대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로 선조들은 경사가 있을 때 축하의 뜻으로 세우거나 새해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입구에 새워왔다. 

마을은 걷기 좋은 곳이지만 시간은 오래 걸릴 수 있다. 더운 여름날이어서 꼭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걸어 다니는 것이 좋아 보인다. 한국의 대부분 솟대가 기둥 하나에 새가 앉아 있는 형태라면 일본의 토리이는 솟대를 두 개 세우고 조금 더 하늘을 안정적으로 받들고 있는 형태이기도 하다. 

걷는 길에는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걸어 다니지 않는 편이어서 그런지 햇살이 유달리 따사롭게 느껴진다. 7월 초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꽃에게는 좋은 시기다. 

명교리는 성평리와 고하리가 연결이 되어 있는 곳이다. 천변으로 수변쉼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작은 소류지와 함께 마을 쉼터와 마을 회관들이 자리하고 있다. 

솟대 위의 새는 대개 오리라고 불리며 일부 지방에서는 까마귀·기러기·갈매기·따오기·까치 등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솟대의 기원은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비롯된 것이라고 보인다. 

하동의 명교마을에는 여러 세거성씨가 살았던 곳으로 김해 김 씨, 전주 이 씨, 하동 정 씨가 살았었다고 하는데 무려 1,600년대부터 살아왔던 곳이기도 하다. 마을 수호신의 성격을 갖고 있는 솟대는 긴 나무 장대 끝에 나무로 만든 새를 붙인 것으로 꽃길 조성으로 마을 주민들이 매일 마을 어귀를 기분 좋게 지나고 있는 곳으로 하동의 구석구석의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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