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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0. 2021

요충지 (要衝地)

논산의 연산은 최후의 방어선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논산의 연산면까지 직거리로 약 100여 km쯤 된다. 두 지역은 두 국가의 요충지이며 최전선 역할을 했던 지역이다. 합천군에는 대야성이 있었고 연산면은 황산벌과 황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백제 의자왕이 선제공격으로 장군 윤충(允忠)을 보내 대야성을 쳐 함락시켰다. 경주까지 가는 길목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당나라 군사를 동원해 백제를 공격하는데 이때 신라가 백제 부여 도성을 함락시키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인 연산의 황산벌을 통과해야 했었다. 

지금은 대추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진 연산면이지만 부여로 천도한 후에 이곳 연산은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다. 이곳이 뚫리는 순간 부여까지는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연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산세를 보면 계룡산에서 천호산,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준령은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신라에 대비하여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기에 최적의 요충지였다. 

백제를 멸망시키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황산군이라 개칭하고 고려초에 연산군으로 바꾸며 연산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현종 9년에 공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후에 감무을 두고 조선 태종 13년에 현감을 설치한 것을 보면 이곳의 중요성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옛 건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조선 후기에 있었던 문루가 정비되어 있다. 오랜 세월 주변지역의 성토로 연산아문의 기단부가 낮아짐에 따라 기단 및 장초석 등이 30㎝ 이상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전체 해체해 지표면에 기단과 없어진 판문을 설치한 것이 2017년이다. 

연산아문의 주변으로는 오래된 고목과 함께 휴식공간이 조성이 되어 있다. 이곳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니 연산시장으로 가기 전 오른편을 잘 살펴보면 된다. 

연산아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초익공계(初翼工系) 5층 누문. 기둥모양의 초석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 누마루[扶樓]를 깔았으며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상층 누마루에는 사면에 계자각(鷄子脚 : 난간의 중간 중간에 세워 돌란대를 받치는 짧은 기둥)을 세워두었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연산아문 위의 꽃과 나무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이 문루의 뒤로 관아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민가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그 규모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연산아문에서 올라와서 보면 탁 트여 있는 앞의 공간이 보인다. 연산아문과 같은 건축물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건축 공간이다 보니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연산아문의 뒤쪽으로는 낮은 야산이 자리하고 있다. 

연산아문 주변으로는 벽화와 함께 연산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이 되어 있다. 바로 뒤쪽에는 지구를 살리는 꼬마 농부의 텃밭이야기가 있는데 연산초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소박한 지역이며 연산향교나 황산성, 개태사 등이 남아 있으며 소시민들의 삶이 있는 곳이다. 벽화로 대추와 그 당시의 추억을 그려두었다. 

연산면에 자리한 탑정저수지에는 계백장군의 묘가 있으며 그 혼을 기리고 있다. 신라의 김유신(金庾信)이 군사를 거느리고 당(唐) 나라 소정방(蘇定方)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니, 백제의 장군 계백(階伯)이 황산 벌판에서 신라의 군사를 방어할 적에, 3개의 병영을 설치하고 네 번 싸워 모두 이겼으나, 끝내 군사가 적고 힘이 모자라 끝내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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