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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1. 2021

한 걸음

풍양조씨의축을 이룬 조신(趙愼)의동곡서원

매일매일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숙명과 같기도 하고 외롭고 힘든 길이다. 자격증 시험에도 난이도가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가치가 있다. 합격률이 낮을수록 의미 있고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원이 있어도 단기나 속성을 말한다면 그 자격증은 이미 의미가 없다. 즉 평균의 노력을 한다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의 시제를 보면 현재의 논술과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온갖 학문이 하나로 합쳐져서 가장 합리적이고 명확한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 과거다.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박팽년·유성원 등의 학자를 길러냈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고려의 조신 선생을 제사 지내는 곳으로 고려 후기에 지은  덕림병사 (德林丙舍)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를 모신 임천의 동곡서원도 있다. 

매일 매일 한 걸음씩은 나아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친구의 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이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어제보다 나아질 수 있는 것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나아짐에 대한 것을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곡서원은  3칸의 사우(祠宇),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쪽 협문(夾門)으로 된 삼문(三門), 2칸의 전사청(典祀廳), 5칸의 고직사(庫直舍) 등이 남아 있다. 

이런 곳에 오면 음료라도 한 잔 가져와서 쉬면서 고택의 곳곳을 살펴야 할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꼭 이런 때는 음료가 없다. 

고택은 뭐니 뭐니 해도 금강송을 잘 말려서 짓는 것이 최고다.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오랜 시간 고택이 유지될 수 있다. 

동곡서원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위로 올라가 본다. 천마산 바위굴에서 살던 풍양조씨의 시조인 조맹은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수양을 하다가 왕건을 만나 삼국통일에 기여함으로써 왕건으로부터 조맹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다고 전한다. 수많은 파가 있지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조신혁(趙臣赫)을 중조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분류되어 세계가 이어지고 있다.

사당의 입구의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지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의 태극문양이 더욱더 진해 보이는 날이다. 철학자 샤르트르는 사람은  먼저 존재하고 나타나고 현실에 나온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의 결정과 선택과 행동에 규정된다고 하였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의미다. 한 걸음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스스로를 계속 만들다보면 거기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해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조금씩 나아지게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부여라는 지역은 삼국통일 당시 백제의 수도였기에 거의 파괴되어 복구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지역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이곳에 있었던 사람의 흔적이 덜 알려져 있었다. 조신은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와도 교분이 두터웠지만 그들이 고려의 길을 택한 반면 조선의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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