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Jul 16. 2021

덕산향교(德山鄕校)

Tantum videmus quantum scinmus.

소제목으로 쓴 라틴어는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라는 의미다. 아는 만큼이라는 의미의 정점이 없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아는 만큼의 영역이다. 그 길이 멀고 험난한 만큼 누구도 쉽게 가려하지 않는다. 예산의 덕산이라는 지역에 자리한 덕산향교에는 공자상이 세워져 있어 조금은 독특한 곳이다. 공자의 앞에 어떤 스승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자는 지식의 길을 개척한 사람 중 대표적인 사람이다. 

덕산이라는 지역은 지금의 예산의 옛 지명이기도 하다. 덕산은 덕풍(德豊)ㆍ이산(伊山)을 합한 명칭으로 이산의 이산현은 본래 백제의 마시산성(馬尸山城)인데, 757년 이산으로 고쳐 군(郡)이 되었던 곳이다. 덕산향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 때 세운 것으로 전해지고, 대성전은 1682년(숙종 8년)에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홍살문을 지나서 덕산향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좌측으로 들어가야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면 7칸, 측면 1칸의 명륜당은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마루이고 좌측에는 방과 창고를 두었으며 가구는 3량 집 구조를 먼저 만나볼 수 있다. 

덕산향교에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외삼문(外三門)·수복가(守僕家) 등이 있다. 찾아간 날에 덕산향교의 공자상을 보니 공자가 말했던 말이 연상된다. 


공자가 말했다. 

"천대를 가진 나라를 다스릴 때는 진지하고 신중하게 정사를 돌아야 하며, 신의를 목숨과 같이 여겨야 한다. 국고를 아끼고 백성을 아껴야 하며 백성의 힘을 동원하려 할 때는 반드시 시기를 가려야 한다." 

시기를 가려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덕산향교의 입구로 들어가는 문은 보통 닫혀 있는데 좌측으로 돌아가 보면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덕산이라는 지역은 이 씨가 많다. 이 씨는 김 씨 다음으로 많은 성씨로 여러 지역에서 유래가 있는데 덕산이 씨도 있다. 고려 명종 때 덕산(당시 덕풍)의 시조 이존 술이 호장을 지내면서 덕산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좋은 길과 좋은 말은 쉽게 잊혀진다. 나쁜 소문이 더 많이 퍼지는 것은 다른 사람을 흉보고 욕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아냥대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포탈에서 뉴스를 눌러서 볼 때 훈훈한 것보다는 자극적인 것을 누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덕산향교의 안쪽으로 들어오니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이 이곳에서 차를 마시는지 차와 다기가 놓여 있다. 코로나19에 낯선 사람과의 대화나 차를 마시는 것도 쉽지가 않다. 공자의 수제 자면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안회를 어질다고 하는 까닭은 불이과에 있다고 한다.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윤리를 밝게 하는 것처럼 같은 잘못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쉽지가 않은 길이다. 가야산 아랫부분에 창건한 뒤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어 고풍스러운 모습의 덕산향교는 살림살이가 보이기에 다른 향교와 다르게 삶이 있어 보인다. 오래던에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7칸·옆면 1칸 규모다. 

대성전이 있는 내삼문이 있는 곳에 올라와서 내려다보니 동재, 서재, 명륜당이 공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불에 타 인조 때 중건한 건물이지만 위치는 변한 적이 없는 덕산 향교는 덕산면 사동리 121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공정하게 말했는데 삐딱하게 받으면 토론이 성립되지 않는다. 세상에 나만 옳고 남은 그른 이치는 없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진리라는 것을 공자상이 말하는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신제가(修身齊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