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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3. 2021

지천서원(知川書院)

인간의 길을 안내하는 공부

짧지만 때론 길게 느껴지는 인생은 망망대해에서 온전한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모두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냥 미성숙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고 살아간다. 과연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까. 여러 가지 이슈도 만들어지고 다툼도 생기며 때론 비극적인 막다른 길로 치닫기도 한다.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다툼의 연속처럼 보인다. 음성의 지천서원의 지천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안다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천서원이 자리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말마리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마을의 역사는 깊은 편이어서 약 500여 년을 헤아리는데 입구엔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조그마한 마을 숲이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면사무소에서 서북쪽으로 2.6㎞가량 소로를 따라가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조선 중기부터 시작한 사화(士禍)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소요유(逍遙遊)했던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1473~1533)과 이를 흠모했던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이 이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더운 여름날 지천서원을 보기 위해 위쪽으로 올라가본다. 수많은 여름을 만났지만 올해가 유독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천서원에 공자당을 만들었던 김세필은 벼슬길에 나아가길 어렵게 여기고 물러나는데 연연하지 않았던 고고한 선비의 상징이기도 했다.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지천서원(知川書院)은 김세필이 후학을 가르치지 위해 지었던 초옥으로부터 유래하는데, 현재 김세필·박상 등 여덟 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그중 김세필에게 배움을 받기 위해 모여든 사람이 마을을 이루었다고 하니 그 명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은 계단이 있지만 옛날에는 접근하기 힘든 초옥이었다. 저 앞에 심어져 있는 나무도 그때는 없었을 것이다. 권력 혹은 금전적인 것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이성의 지고함에 매료된다고 한다. 

박상은 지금의 마을 숲 자리(말개뚝)에 말을 메어두고 김세필을 찾아가 담소를 나누곤 했는데 여기서 마을의 이름(말마리)이 비롯되었다고 하니 배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돌계단 앞에는 노송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고, 좌측으로는 솟을대문이 서 있는데 앞에는 경모문(景慕門)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있다. 배움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마을을 이룰 정도로 지성인이었던 김세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성종 4년인 1473년에 태어나, 중종 28년인 1533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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