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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05. 2021

귀신사 백일홍

머물며, 보며, 생각하며,글 쓰며

나는 자연인도 아닌데 자꾸 꽃을 쓰고 나무를 보다 보니 자꾸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귀신사로 오기 전에 원추리꽃을 보았다. 주황색의 원추리 꽃은 망우초라고 부르며 바라보고 있으면 근심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한다.  복더위 중에 피는 황색의 꽃밥을 가지고 노란색 백합 모양의 꽃으로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다시 피고 시들기를 반복한다. 그러나다 계단을 올라와보니 귀신사에 백일홍이 만발해 있었다. 

귀신사에는 여러 번 와보았지만 백일홍이 만발했을 때는 처음 와보았다. 사랑하면 보인다는 그 백일홍이 드디어 피어 있었다. 고려시대 국사 원명(圓明)이 중창한 국신사(國信寺)는 중창하면서 이름을 바꾼 귀신사는 당시에는 건물과 암자가 즐비했던 대찰이었다고 하지만 백일홍만으도 충분해 보인다. 

저곳에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을 보시는 분이 잔디밭을 다듬고 있었다. 이 더위에 노곤한 일이다. 귀신사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82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大寂光殿)을 비롯하여 명부전·산신각·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배롱나무는 중국 남부가 원산지라고 하나 학명을 보면 뒤에 India라고 되어 있는데 혹시 식물학자인 린네가 중국과 인도를 같은 나라라고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중국에서 건너온 배롱나무는 임진왜란 무렵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영어로 인도는 India인데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인도에 갔다고 생각해서 그곳의 토착민을 인디언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크기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석조에는 항상 수생식물이 있다. 마실 수는 없지만 하나의 소우주와 같은 느낌이 든다. 귀신사는 904년(효공왕 8)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당나라 고승 법장(法藏)의 전기로 정식 이름은 당대천복사고사주번경대덕법장화상전(唐大薦福寺故寺主飜經大德法藏和尙傳)이다. 

위로 걸어서 다시 올라가 본다. 위에도 멋들어진 배롱나무가 있다. 왜구는 서해안 지역에 자주 출몰했는데 이를 고려시대 최영이 홍산대첩 때 모두 몰아냈다. 홍산대첩 이후 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은 그 해 9월이었는데 김제 귀신사(歸信寺)에 주둔한 왜구를 급습하여 진땀승을 거두기도 했다고 한다. 

삼층석탑을 지나 다른 배롱나무를 보기 위해 가본다. 고려시대에 김제(金堤)에는 내재역(內才)이라는 역참이 있었다. 역참의 중심 임무는 국가의 명령이나 공문서를 지방으로 전달하는 일이었지만 원래 몽골이 서유럽의 침공을 원활하기 위한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김제의 배롱나무를 보기 위해 한참을 왔다. 한참이라 함은 역참과 다음 역참까지를 의미한다.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곳까지 한참을 간다는 말은 그때 나온 것이다.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찰 귀신사지만 귀신사는 정유재란 때 활동했던 승병장이었던 뇌묵처영(雷黙處英)에 복수하기 위해 그가 출가했던 금산사를 불태울 때  금산사 인근의 사찰들, 예를 들면 귀신사(歸信寺)도 이때 불탔다.

이후 귀신사는 17c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적광전과 대적광전 안의 소조삼불좌상이 보물로 지정 돼 있으며 명부전불상, 영산전불상, 귀신사부도, 석수, 귀신사석탑 등이 유형문화재로 지정 돼 있고 청도리3층석탑이 문화재자료로 지정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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