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쓰기

2030

의식의 진화

지연은 멍하게 경일이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아프고 시리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지금 사회의 변화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이라는 것 자체는 이제 가진 사람들이나 남다른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특별함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치 게임처럼 자신과 다른 개성을 가진 아바타의 공간처럼 메타 휴먼이 탄생했지만 지금은 직장인의 50%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에 굳이 집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되어서 과도한 집중은 해결되었지만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접속하는 것이 사람의 의식변화를 만들었다는 말이야?"

"예 제가 시뮬레이션하기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바이러스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거잖아."

"AI가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AI를 닮아가는 형태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야?"

"이미 알고리즘의 설계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습니다. AI의 뉴런 시스템을 교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메타 휴먼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큽니다."


5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1초에 수천만 번 반짝이며 이리저리 오가며 재설계하듯이 조립되는 토라(Torah)를 지켜보았다. 토라가 모세오경을 의미하듯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지만 전력 소모는 최소화하며 유기적으로 작동했다. 화려한 색깔의 블록이 순식간에 조립되면서 사람이 접속할 때마다의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이제 모두 디지털화된 화폐부터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스템을 단 1초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말하지 말고 있어."

"예 그런데 최근의 사회변화는 저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했을 수도 있습니다."

"토라를 어떻게 누가 할 수 있어. 이미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는데."

"아무튼 알겠습니다."


남자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와이프가 그냥 가상적인 존재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팔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붉은색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남편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최근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몰라 나도 모르겠어. 그냥 당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어."

"빨리 응급키트 좀 꺼내 줘."

"알았어."


남자는 거실의 벽을 누르자 응급키트가 나왔다. 스프레이로 와이프 팔에 베인 곳에 뿌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흘리던 피가 지혈되고 그녀는 얼마 전에 구입한 의료기기에 누었다. 팔에 적당량의 마취제를 넣더니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신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큰 사고를 칠 것 같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냥 순간적으로 아무런 감정이 없었을 뿐이야."

"그게 이상한 거야. 사람이 감정을 가져야 하는데 상대의 고통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거잖아."

"굳이 그런 게 필요해? 그런 게 더 고통스러운 거 아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왜 법이 있고 규범이 있고 가정이 있겠어."

"상식? 그럼 내가 과잉 활동성이 있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아무튼 이런 상태라면 당신과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어."

"나도 별 의미가 없어. 굳이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메타 휴먼의 핵심 코어인 토라는 초기에 다중지능 이론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극단적 몰입이라던가 직관력, 실존적 고민 등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진화하면서 인간의 유전자와 신경계, 내분비계의 호르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토라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의식의 진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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