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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ug 15. 2021

선비와 글

창암 이삼만과 선비의 길

소학은 송나라 성리학자인 주희가 편집한 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 같은 사람들은 편찬 과정을 정확하게 논변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소학의 보급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라고 하면 글로서 잘 알려진 사람이다. 그와 당대에 어깨를 겨루며 글을 썼던 사람이 바로 창암 이삼만이다. 창암 이삼만은 통일신라시대 김생의 글씨를 토대로 조선 고유의 서예미를 구현해냈던 사람이다. 정읍과 순창은 연결되어 있는 지역인데 정읍에서 창암 이삼만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었다.  

잠시 정읍의 시립박물관을 들렸다가 창암 이삼만의 글을 보고 그 흔적을 찾아갔다. 창암 이삼만은 정읍 부무실 마을 출생으로 추사 김정희, 눌진 조광진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알려진 사람이다. 전서, 예서, 행서, 초서에 모두 능통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의 서체가 강직하면서 기세가 느껴진다면 창암 이삼만의 서체는 물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분다는 유수체가 특징이다. 그의 글씨 중 새겨진 석담을 접하기 위해 올라가 본다. 벼루 세 개를 먹으로 갈아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면서 세상을 살았다는 창암 이삼만과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었다는 추사 김정희는 노력에 대해서는 경중을 가리기가 쉽지가 않다. 

석담이라는 글을 남긴 창암은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이론과 실천을 겸비함으로써 서도 세계의 지평을 넓히면서 창암체를 낳았던 사람이다. 

지금까지 전주에서 주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읍이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창암이 정읍 부무실에 살면서 석담 암각서와 부무실편액을 남기는데, 이 때는 이삼만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시기라고 한다. 

정읍에서 멀지 않은 순창에는 선비의 길이 만들어져 있다. 강을 보면서 걸어볼 수 있는 길이다. 복흥면 낙덕정에서 출발해 가인 김병로 생가, 숲 속 데크로드 길을 지나 훈몽재까지 6㎞를 2시간쯤 걷는 길이 선비의 길이다. 

선비의 길에서 부지런함이란 마음가짐이 굳건함이라고 한다. 자연과 벗하고, 사람과 벗하고, 학문과 벗함이 있으며 선비들은 차를 즐겨 마시며 학문에 대한 갈증과 사회 열망에 대한 갈증을 달랬다고 한다. 

맑은 물이 훈몽재의 데크길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직 날이 덥긴 하지만 7월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밖에 나오면 더위에 탄식이 절로 나왔는데 요즘에는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다. 훈몽재 입구에 자리한 정자의 이름은 삼연정(三然亭)으로 하서 김인후 선생이 삼자 연인 산(山), 수(水), 인(人)을 노래한 ‘자연가(自然歌)’에서 그 명칭을 따왔다고 한다. 신록이 이제 물이 들 시기가 곧 올 테고 시골 마을의 풍광도 달라질 것이다. 은은한 향기가 나듯이 잠시 걸어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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