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성과 은진을 이어주었던 중요한 다리
논산이라는 지역에는 특이하게 석교가 여러 개 남아 있다. 다른 지역에는 석교가 없거나 1개 정도에 불과한데 논산에는 필자가 알기로는 세 개가 있다. 그만큼 논산이라는 지역이 중요한 교통 요지였음을 알려준다. 논산에서 생산되는 쌀은 전국으로 나간다. 어떤 쌀이 가장 맛있냐고 묻는다면 올해 생산된 햅쌀을 먹기 전에 갓 도정한 쌀을 바로 밥을 지어서 먹는 것이다.
사후에 염라대왕 앞에 가서 논산에서 왔다고 하면 묻는 세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미내다리를 보았느냐, 두 번째는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보았으냐, 세 번째는 개태사의 철확을 보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만큼 논산에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내다리만큼의 완성도가 있는 것과 달리 실용적으로 보이는 다리가 논산 석성의 수탕석교다. 처음 와서 든 생각은 뜬금없는 곳에 놓여있다는 것이었지만 원래 이곳에는 옛길이 있었다고 하며 물이 흘러갔던 것으로 보인다. 지형이 바뀌어 마치 엉뚱한 곳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원래는 강가 모래밭에 강의 흐름에 가로질러 묻혀 있던 것을 지금과 같이 복원하였다고 한다. 발굴 당시 다리 옆에서 영조 16년(1740)에 다리를 고쳐 세웠다는 중수비가 있는데 아래에 보면 보인다. 다리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내려가 본다.
동국여지승람 석성현조에 수탕포와 수탕석교가 석성현의 동쪽 7리에 있고, 수탕원이 동쪽 13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포구에 원과 다리가 있는 중요한 교통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최초로 세워진 시기는 이르면 고려시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수탕석교는 논이 있는 곳 바로 앞에 놓여 있다. 요즘에는 벼의 수확도 빨라지고 있다. 논산에서도 프리미엄 쌀이 나오지만 수확시기가 짧아지면 이기작 이모작을 통한 농가 소득 증대, 짧은 재배 기간에 따른 노동력 농자재 수자원 절감, 기후변화 시대 식량위기 대응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탕석교는 널 돌다리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리다. 널 돌다리는 튼튼한데 결구(結構) 방식을 보면 매우 정교하다. 전통한옥이 못이나 꺾쇠를 절대 쓰지 않듯이 기둥에 보와 도리, 창방이 결구되는 방식이다. 힘(荷重)을 받는 방향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칸 간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가구식(架構式) 결구'라 부른다. 보다시피 돌난간은 없다. 돌난간은 필요에 따라 설치하는데 돌난간을 설치한 다리는 궁궐이나 한양 청계천 등에 있는 다리 외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