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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3. 2021

과거와 미래

Back to the Fucture 면천

사람이 살면서 가장 확실한 순간은 오직 현재뿐이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변화도 갑작스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현재였을 과거의 점들을 찍어서 선을 그어보면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으며 미래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 거시적인 변화는 사회의 변화이며 미시적인 변화는 개인적인 변화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점들이 이어서 지금의 자신이 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사회변화의 점을 이어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노력을 하면 된다. 사회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과거에서 미래를 찾는다는 의미는 바로 그런 것이다. 아주 오랜 과거부터 삶의 점을 잘못 찍었다면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터닝포인트라고 생각할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자영업자들이나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안타깝지만 코로나19가 가속화시킨 변화는 이미 지난 10년 동안 있어 왔다.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앞으로 10년은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뀔 수도 있다. 

오래간만에 면천읍성을 찾아가 보았다. 얼마 전에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인 당진시 면천읍성 객사 복원공사 상량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참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지금은 축성된 읍성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량식(上樑式)은 목조 건물의 골재가 거의 완성된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에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상량)를 올리고 거기에 공사와 관련된 기록과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봉안하는 의식으로 이제 벽체 및 마무리 공사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면천 객사 조종관(朝宗館)은 1433년(세종 15년) 처음 세워진 이래 다섯 차례 중수하고 1662년(현종 3년)에 다시 지어졌었는데 지난해 말부터 30억 원을 들여 추진 중인 면천읍성 객사 복원공사는 철저한 고증과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일제강점기 이전 모습으로 살려내는 것으로, 오는 12월 완공될 예정이다. 

면천읍성은 면천지역 행정 중심지를 보호하기 위해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 1천558m에 적대 7곳, 옹성 1곳, 여장 56곳, 우물 3곳과 동헌, 객사 등 8개 관아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서해에 자리한 읍성들 대부분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돌에는 해미읍성처럼 옥천, 석성, 진잠 등 성을 쌍을 때 인력을 동원한 고을 이름들도 새겨져 있다.

면천읍성을 돌아보고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골정 쉼터를 찾았다. 이곳에는 여름에 연꽃이 만개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있을 때 조성했던 곳이다. 연못 한가운데 볏짚 올린 정자가 있는데 건곤일초정이다. 인근 면천향교 유생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읊고 학문을 익혔다고 한다. 

과거에는 30년 단위로 과거의 점을 찍어서 이으면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20세기에 평생직장이 있었던 시대가 그런 때였다. 그 시간은 점점 짧아져서 10년 단위로 변화를 모색하고 더 짧게는 1년, 3년, 5년의 변화를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면천읍성의 객사가 미래로 오기도 하고 그 미래는 곧 현재가 된다.  면천읍성은 1914년 당진에 통합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성벽이 소실되었지만 2007년 읍성 복원사업이 시작된 후 마을에 새로운 주민들이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다. 2021년이 된 지금은 옛 모습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그 속에 삶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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