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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7. 2021

평범함의 역설

왜 남들을 보고 따라가고 살려고 하는지..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어느 정도 살아야 평범해지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어릴 때 개인적으로 아르바이트의 기준은 확실히 정했었다. 대학교 졸업을 하는 시기가 오면 회사가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려면 기준이 필요했다. 다른 사람보다 가지고 있는 능력의 지표를 갖추어야 했다. 그래서 대학교 다닐 때는 자격증이나 성적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원하는 직장을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로 걷기 위함이었다. 남들과 똑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더 공부하고 덜 어울렸다. 물론 같은 방향은 아니었다. 


서울로 굳이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는 않았다. 경쟁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과의 경쟁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없고 굳이 부모의 그림자(라고 할만한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에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했던 아르바이트 종류만 10종류는 넘었다. 기준은 시간당 단가가 높은 몸이나 머리를 쓰는 일은 하되 시간당 단가가 낮은 서비스업은 지양하자라는 것이었다. 서비스업일지라도 단가가 높은 일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아 보였다. 


평범함을 지향하는 것은 평범해지기 힘든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대충 살고 대충 먹고 대충 어울리다 보면 결국 시간만 지나간다. 결국 원점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발전은 딱히 없다. 그걸 변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말하겠지만 결국 똑같다. 시간이라는 엄청난 자산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시간을 활용하는 사람의 능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능성은 자신에게 있지 지역이나 부모, 혹은 지인들에게 연관되어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이상 어디를 가더라도 자차를 이용하는 것을 훨씬~~~ 선호한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기 위해 이동할 때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을 선호한다. 굳이 그 시간에 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간의 편의나 시간의 절약을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필요한 일이라면 차라리 차를 가지고 가서 대리를 부른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간혹 이해가 안 갈 때가 있다. 왜냐면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알기 때문이다. 시간을 정말 비효율적으로 쓰지 않는다면 시간은 온전하게 자신의 편이지만 그냥 흘러 보내면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남처럼 살지 않고 자신처럼 살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자신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다. 


굳이 서울에서 살 필요도 없고 굳이 명문대를 갈 필요도 없고 돈의 기준으로 기업에 갈 필요도 없다. 자신만의 룰로 자신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사회의 룰 혹은 타인의 관점의 룰로 끌려들어 간다. 평범하게 살려고 하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 인생은 여전히 역설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며 따라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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