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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1. 2021

귀래정(歸來亭)

고생은 젊어서사서 한다는말은 사실일까?

조선시대에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육신이나 생육신과 달리 권력의 길에 섰던 대표적인 사람으로 신숙주가 있다. 개인적으로 신숙주 같은 사람보다 차라리 한적한 곳에 가서 자연과 벗 삼아 산 것에 대해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형인 신숙주가 출세길을 다리며 세조 때 큰 권세를 누렸지만 그의 동생인 신말주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여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신말주가 지었다는 정자를 보기 위해 찾아가 보았다. 

지금이야 그냥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곳에 갔을 때 괜히 이 이정표를 보고 올라갔다는 생각은 든다. 차로도 가까이 갈 수 있는데 이곳에서 올라가면 좀 걸어야 한다. 게다가 막 여름이 지나서 길이 잡초로 인해 중간에 끊겨버렸다. 

이곳까지는 그냥 잡초가 있어도 걸어서 올라갈만했었다. 괜히 반바지를 입고 왔나를 생각할 때쯤 길이 안보이기 시작했다. 문화재를 관리를 하시는 분이 이곳의 잡초를 아직 제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올라간 것도 아깝고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잡초를 제치고 가보기로 한다. 

슬슬 잡초가 살결에 쓸려서 가렵고 따가워지고 있다. 슬쩍 보이 귀래정으로 보이는 정자가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 가보기로 한다. 

생각지도 못한 땀을 흘렸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민 귀래정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는, 조선 세조 2년(1456년)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이다

다리에 생채기가 이곳저곳에 나버렸다. 그래도 보려고 마음먹었던 것을 보았으니 약간의 고생도 괜찮다. 내 만일 벼슬을 사퇴하여 한가함을 얻어서 후(신말주)를 따라 이 정자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귀래(歸來)의 사를 읊조리고 지족(止足)을 노래했던 서거정 선생이 지은 귀래정기(歸來亭記)가 이곳에 있다. 

물은 그 근원이 적성(磧城)의 북쪽에서 발하여 남쪽으로 꺾여 꾸불꾸불 흘러 두 산협 사이로 나오고 다시 합쳐 동쪽으로 흐른다고 한다. 귀래정에 앉아서 바라보니 풍경이 괜찮다. 


신말주에게 어울리는 시를 찾아본다. 


대성약결 기용불해 (크게 이룬 것은 마치 모자란 듯하나 아무리 써도 해치지 않고)

대영약충 기용불경 (가득 찬 것은 마치 빈 듯 하지만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대적약굴 (크게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대교약졸 (뛰어난 솜씨는 마치 서툰 듯하며)

대변약눌 (탁월한 언변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조승한 (빠르게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정승열 (고요함은 더위를 이긴다.)

청정위천하정 (맑고 고요함이 세상을 바르게 한다.)

수림과 무성한 산록은 연기와 구름이 아련한 가운데 기이한 경치를 가져다가 놓은 듯한 곳이다.  신말주가 날마다 건(巾)을 쓰고 짚신을 신고 그 가운데서 읊조리어, 그 즐거움이 유유자적 하였다고 한다. 


"뛰어난 선비는 도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보통의 선비는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며, 못난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으니 못난 선비가 듣고서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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