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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6. 2021

학문 (學問)

정치를 외면하면 무지한 사람에게 지배받는다.

이 글을 안 쓰기가 참 힘들었다. 대선주자라는 사람의 말이 참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이기도 하다. 공학을 전공하였고 IT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적지 않은 분야의 자격증을 따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왜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또다시 예술분야가 따로 갈라지는지 이해가 안 가는 교육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에 몰지각함을 생각했었다. 그런 시스템은 다른 분야를 알 필요가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며 타당성을 부여한다. 지금까지 지겹게 들어본 말 중에 하나가 문과라서, 이과라서라는 말이다. 모든 학문은 그 내용과 이해의 방법이 틀릴 뿐이지 정점에 이르면 모두 유사하다. 


인문학은 이해하는 실천하는 학문이며 법학은 외우고 적용하는 학문이다. 그 적용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가슴이 없는 법학은 돈이나 법리적인 해석에 매몰되게 된다. 인공지능을 깊이 있게 설계하려면 인문학이 필요하며 기초 알고리즘은 공학이 기반이 되어준다. 공학이나 자연과학 당연히 중요하고 역사도 중요하다. 예술분야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감성적인 가치를 부여해준다. 


필자는 어떤 분야에 이해하고 접하지 않으면 쉽게 거론하지 않는다. 직접 경험하고 알고서야 비로소 토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먼 지평선에 놓여 있는 손에 잡히지도 않을 무언가에 대해 쉽게 언급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한 번 시작하면 아니라고 생각해도 우선은 참고해본다. 참고해봐야 적어도 한 발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힘들고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으면 쉽게 포기하지만 그러면 여전히 도돌이표가 되어버린다. 


개인적으로 굳이 석사, 박사과정은 그쪽에서 일할 것이 아니라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게 필요할 수도 있고 깊이 있는 학문의 기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단점은 지도교수의 뒤에서 지도교수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협소한 시야가 있으며 자신의 학문 세계는 대부분 교수가 알고 있는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같이 석박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공학이나 자연과학, 의학, 법학은 공부할수록 좁아지며 인문학은 공부할수록 넓어진다. 


학문에 따라 많이 공부할수록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분야가 있고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분야가 있다. 어떤 길을 갈지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일뿐이다.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완전하게 자신만의 지식분야에 갇힐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 등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쇼맨십도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지식세계에 갇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지했기에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된 나치에서 일했던 여자가 결국 극적인 선택을 했듯이 어떤 의미에서 보면 무지한 것 역시 죄다. 성인이 된 사람은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배우고 익히지 않았기에 사회적으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그렇지 않아도 무지한 사람이 주목받는 것을 본다. 하나의 학문 혹은 자리에만 매몰되어 살았다면 그 사람은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자리에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 그 학문이 아무리 어렵고 자격을 획득하기가 쉽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회 공동체적 삶에서 이로운 쪽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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