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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04. 2021

설씨부인

문장가이며 서화가였던 순창 여인

역사 속에서 문학, 예술, 과학 등에서 큰 성과를 낸 여성들이 적지가 않았다. 서양뿐만이 아니라 동양에서도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에도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 등 여러 여류시인이며 문장가도 있었으며 그림을 그렸던 여성도 있었다. 설 씨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 쉽지가 않은데 순창군을 가면 설 씨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조금 색달랐다. 보통은 다른 사람 성씨에 대한 본관에 대해 관심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자주 찾아보곤 한다. 설 씨는 순창 설 씨(淳昌薛氏)로 전라북도 순창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이곳은 신경준과 신말주의 부인인 설 씨 부인의 권선문이 남아 있다. 신경준이 그린 고지도는 군사적인 용도로 북방 지역의 강화도 일대를 그린 2장의 지도로 이 지도는 '북방 강역도'와 '강화도 이북해역도'라는 각각의 명칭이 있다. 신경준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신숙주의 동생인 신말주의 11대손으로 문자학, 음운학, 지리학 등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순창설씨의 시조인 설거백(薛居伯:호진(虎珍))은 신라가 생기기 이전인 기원전 57년 박혁거세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6부 촌장 중 한 사람이다. 설거백은 현재 경상북도 경주지역의 촌장이었는데 박혁거세를 5 촌장과 함께 신라 초대 왕으로 세웠다. 경주지역에서 활동했던 설거백을 시조로 받들고 경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오다가 36 세손 설자승이 1124년(고려 인종 2) 호부시랑(戶部侍郎)이 되고 순화백(淳和伯)에 봉해지자 본관을 순창으로 분관하였다.

설씨부인의 권선문은 외삼문이나 내삼문등에 걸린 이름이 아니라 불교에서 신자들에게 보시를 청하는 글을 의미한다. 설씨부인의 권선문은 신말주의 부인인 설씨가 쓴 글과 사찰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병풍처럼 묶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녀가 쓴 권선문은 조선시대 여성 문인이 슨 최초의 산문 형식의 글로 신사임당의 글보다도 60여 년 앞서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산문은 느낌이 에세이와 비슷하다. 운문이 주로 리듬을 반복한 것인데 반해, 산문은 서론·본론·결론 등의 구성 방법에 따라 기술한다. 산문은 일정한 의미의 표현과 지시의 힘에 의존한 '명료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에 쓰기가 명확하다. 일상적인 언어로 짜인 글을 의미한다. 

안쪽으로 들어오니 남산사가 보인다. 남산은 순창군의 진산인 오산(烏山)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고령신씨(高靈申氏) 신말주(申末舟)가 설씨 가문의 여인과 혼인을 하면서 남산마을에 신씨의 역사가 이곳에서 내려오게 된다. 순창 여인들의 길에 자리한 자혜당(慈惠堂) 현판을 건 네 칸 건물이 소박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자혜당에서 설씨부인이 태어나고 생활했다고 한다.  배향록(配享錄)을 보니 고령신씨 남산파를 대표하는 열두 분의 조상들이 배향되어 있다. 

지금은 신 씨 후손들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기념비들과 깨끗하게 정비된 건물들이 고령신씨의 세를 예상케 한다. 고지도를 남긴 신경준은 글을 과학적으로 연구한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와 우리나라의 산세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산경표(山經表)’ 등의 저술을 남겼는데 흔히 들어보는 백두대간도 그가 쓴 것이다. 

‘일관문(一貫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외삼문에 들어서면 여견문(如見門), 유장각(遺藏閣), 충서당(忠恕堂)이 높은 축대 위에 있으며 남산사 그리고 설씨부인의 흔적과 오래된 산문 형식의 글인 권선문은 불교의 인과 응보설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녀의 권선문은 국립 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 제728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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