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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5. 2021

가을 계곡

서산 용현계곡에 찾아온 가을

여름보다 가을의 계곡이 더 맑게 느껴진다. 겨울이 더 맑아지겠지만 얼음이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때가 많아서 가을의 계곡이 맑은 물을 확인하는데 가장 좋다. 서산의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면서 마애여래 삼존상으로 잘 알려진 용현계곡을 찾았다. 계곡에는 적지 않은 펜션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쉼을 위해 찾아오는 차량들만 가끔씩 보이기만 했다. 옛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보며 위쪽까지 올라가 본다. 

이곳은 여러 코스길이 중첩되는 곳이다. 원효깨달음 길 4코스, 5코스, 6코스가 내포문화숲길과 함께 하고 있다. 원효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의 길이라고 하는데 그만큼의 힘든 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무척 어렵다. 시도하지 않으면 얻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근본적인 가치는 인간의 논리로 합리화될 수 없다. 

가을에 피는 꽃들은 여름과 달리 조금 수수한 느낌이 든다. 꽃들을 보면 인간의 논리와는 별개로 자신의 본질에 의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매번 입구를 지나면서 수수한 모습의 강댕이 미륵불을 본다. 이 미륵불은 강댕이로 진입하는 지점에 설치된 강당교에서 북쪽으로 약 100m 지점의 전(前) 군장동 안, 현(現) 고풍저수지안에 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하는 중국 사신들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 하며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 이었다고 한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은 지금까지 2~3번쯤 보았다. 시간에 맞춰가야 볼 수 있는 불상이다. 국보이기 때문에 아무 때나 볼 수 있지는 않고 항상 스님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가을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나무가 입구에서 이정표에 앞서 가을임을 알려주고 있다. 1년은 사계절로 항상 가을에는 수확의 계절이며 결실의 시기이기도 하다. 인생과 비슷하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내 잘 가꾸면 가을에 풍성해지며 그렇게 겨울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좋은 풍경이 있는 곳에는 항상 선비들이 찾아와서 글을 기록하고 시를 썼다. 이곳에도 그런 기록들이 남아 있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에는 모든 것이 서늘한 풍경이 열리게 도니다. 가을 낭만이 잠깐 지나고 나면 다시 추운 겨울이 찾아오는 셈이다. 아름다운 정취와 서정을 만나보는 것도 잠깐이다. 

이 절벽은 방선암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조선시대 해미현내에 거주하던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화창 한 봄날에 학을 연상케 하는 주변의 노송과 명경수가 유유히 흐르던 천혜의 비경이 있는 이곳 마당바위 위에서 뜻있는 문인들이 모여 시회를 열어 많은 시작을 하였고 이것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에 방선암이라고 새겼다고 한다. 

가을 빨갛게 익어가는 사과가 익어가는 시간만큼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다. 맑은 물의 양쪽에 하얀 암석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계곡을 정비하면서 쌓아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자연스럽지 않지만 나름대로 용현계곡의 풍경에 스며들어가고 있다. 

하늘이 높고 산은 울긋불긋 옷을 입기 시작하고 물 맑은 계절 속에 그 속에 시가 있고 글이 있다. 산이 울긋불긋한 가을밥상을 차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직 다 차려놓은 것 같지는 않다. 조금 기다려보려고 했지만 그 정도 시간 안에 다 차릴 것 같지 않아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계곡과 잘 차려진 울긋불긋한 밥상의 가을의 색감은 정말 잘 어울린다. 그림을 잘 알지 못해도 사진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그 자체로도 좋다. 아직 자연이 차려놓은 울긋불긋한 가을밥상을 만나보지 못했다면 잠시라도 바깥으로 나가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거기에 밥상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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