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개입되는데 그것이 진실될까?
AI가 진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능적인 부분에 국한되고 있다. 최근 광고모델로 가상인간들이 등장하면서 다시금 가상 캐릭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직접 만나보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연예인이나 정치인데 대해서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무작정 좋아하던지 무작정 싫어하던지 혹은 열광한다. 왜 전지현이 입은 옷이 이뻐 보이는지도 모르겠고 그녀가 먹는 치킨이 맛있는지도 모르겠다. BTS가 광고하는 안마의자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것의 모델의 광고와 왜 연결성이 있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그 촌스러운 체육복을 사고 그냥 설탕 덩어리에 불과한 달고나를 구입하려고 애쓰는지 가끔은 궁금하다. 지금 나온 가상인간들은 모두 사람의 손을 탄 것이고 진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물론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과 거의 비슷하게 맵핑될 수는 있다. 생각의 한계가 바로 그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의 한계를 못 넘어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화 엑스 마키나를 의미 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인공지능을 인간처럼 설계한 기계에 넣고 진화하는 것을 보는 것으로 그렸는데 조금은 암울한 미래상이다. AI의 두뇌를 설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이다. 습득하고 진화해가는 모델링은 개발자나 설계자가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인문학자와 다르다. 그들의 설계대로라면 AI는 감성이나 감정에 대한 공감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상태에서 발달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나오는 가상인간들의 회사 담당자가 나온 시사프로그램을 보았는데 만약 그들이 담당자라면 가상인간은 거짓됨에 불과하다. 그럴듯하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로 맵핑해놓고 상업적인 부분에만 집중될 뿐이다. 잠시 동안 돈은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캐릭터의 효용성은 금방 떨어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