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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1. 2021

수채화 편지

구미의 산동 참 생태숲

수채화의 채색이 가미된 편지를 쓰는 것은 공기가 맑은 산속으로 가야 할 것만 같다.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의 분위기 속에 숲은 느리게 변하는 것만 같다. 아마 하루 종일 숲 속에서 나무를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느리다고 해서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느림의 색채를 자신이 느끼지 못할 뿐이다. 

느린 우체통, 폐목재로 만든 뱃살건강검색대, 산울림 밴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놀이터등이 자리한 산동참생태숲은 숲 속에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수채화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한 혹은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삶은 불확실성이 언제 어디서든 나올 수가 있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갈 때도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하루의 고단하고 피곤한 일도 축하일이 될 수 있다. 어떤 색이 들어갔을지는 모르지만 수채화 편지란 그런 의미가 아닐까. 

이곳은 숲 속의 생태를 체험하는 체험공간이다. 다람쥐가 저렇게 다이내믹하게 도토리를 찾아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람쥐는 나중을 생각하며 도토리를 이곳저곳에 숨겨놓고 쟁여놓지만 실상 상당 부분은 자신이 어디다가 두었는지 몰라서 다시 찾아다닌다고 한다. 어딘지 모르게 사람과 닮은 구석이 있다. 

새들처럼, 뿌리 깊은 나무, 행복이라고 쓰여있는 것 가운데 커피잔이 걸려 있다.  보기에는 단단해 보이는 돌이지만 끊임없이 반복의 과정을 거치며 이곳에 와 있다. 

바깥의 환한 햇살이 새삼 반가워지는 순간이다. 이제 산책을 할 시간이다. 걸을 때 사람은 무언가를 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지형에 집중하고 주변 풍경을 인식한다. 예로부터 철학자들은 걷기를 즐겨했었다. 

산동숲은 둘레길로 이렇게 걷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철학자인 루소에게 걷기는 숨쉬기와 같았다고 한다. 그는 멈춰 있을 때 생각에 잠기지 못하고 몸을 움직일 때 머리가 잘 돌아갔다고 한다. 루소는 완성되지 못하는 유작으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라는 책을 남겼다. 

나무인형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가지고 연주를 하고 있다. 이런 연주의 백미로 기억하는 영화는 타이타닉에서 침몰하는 배에서도 연주하는 그들은 마지막 연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비탈을 이용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시설과 구석구석에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빛의 속도로 누리고 있다. 전화, 문자, SNS 등은 빛의 속도를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세상에 공개되기도 한다. 수채화는 색이 천천히 칠해져 간다. 

이곳 산동 참 생태숲에는 조각상들이 많다. 동물의 모습을 한 것도 있고 사람의 모습을 한 것도 있다. 

쉼터에 오니 물이 흘러나와서 채우고 넘어가도록 만들어두었다. 오래전에 탈레스는 모든 물질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성찰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자연을 포용하고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수채화 같은 편지가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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