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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2. 2021

바른말, 고운 말

정여창이 은거하며 살았던 하동 악양정

바른말과 고운 말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른 것과 고운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같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지만 표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곱게 표현해서 생각이 잘 전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바른말을 통해 바꾸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하동 정 씨인 정여창은 바른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조선 전기 사림파의 대표적인 학자였지만 연산군 때 훈구파가 일으킨 사화에 휩쓸려 죽었다. 

정여창이 은거하면서 제자를 길렀다는 악양정을 찾아가는 길에 통새미라는 마을분들의 목을 축여주는 우물을 잠시 들러보았다. 우물의 이름은 통새미인데 사전적인 의미로 자르거나 쪼개지 아니한 생긴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우물에 쓰이며 비가 오는 날 새미(우물)로 통새미는 큰 우물이라는 뜻이다. 

잠시 우물을 덮개를 살포시 열어보았다. 맑은 물이 그득하게 차 있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정여창도 이물을 그러다가 먹지 않았을까. 

이곳이 바로 정여창이 하동에서 머물렀던 악양정이다. 악양은 하동의 한 지명이기도 하다. 그는 이상적인 사람이며 이상 사회를 꿈꾸었던 사람이다. 인정이 보편화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도덕적인 길을 걸었다. 그러나 기득권이었으며 집권세력인 훈구파는 그런 도덕이나 바른말은 원하지 않았는데 그 길에서 사화로 연루시켜서 정여창을 죽게 만들었다. 

문이 열려 있는 악양정의 안으로 들어가 본다. 건물은 15세기 말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며 고종 38년(1901)에 군수의 지원과 후세의 참여로 다시 고쳐 지었다. 1920년에 3칸이던 건물을 4칸으로 덧붙여지었다고 한다. 

4칸의 건물이 크지 않지만 정여창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학식이 높고 행실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았던 정여창은 고운말보다는 바른말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물욕(物欲)과 공리를 배제할 수 있는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했는데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고 높은 자리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악양岳陽 _ 정여창(鄭汝昌) 

風蒲泛泛弄輕柔(풍포범범롱경유)   냇가의 버들잎은 바람결에 한들한들

四月花開麥已秋(사월화개맥이추)  사월의 화개 땅엔 보리 벌써 익었네

看盡頭流千萬疊(간진두류천만첩)  두류산 천만 겹을 두루 다 보고나서

孤舟又下大江流(고주우하대강류)  한 조각 배 타고서 큰 강 따라 내려가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하동을 모두 담은 것 같은 느낌이다. 섬진강가의 버들잎이 바람결에 흩날리고 화개 땅에 보리가 익어갈 때 작은 배를 타고 유유히 흘러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연산군의 스승으로 바른말을 해서 연산군이 탐탁지 않아했던 정여창은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죽고 갑자사회가 일어났을 때는 부관참시( 이 극형은 무덤에서 관을 꺼내어, 그 관을 부수고 시신을 참수하는 것으로, 부관형과 참시형을 합친 형벌이다)까지 당한다. 이후 중종대에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광해군대에는 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 등과 함께 5현(五賢)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의 시호는 문헌이다. 


바른말, 고운 말 중 어떤 것을 쓰면 좋을까. 그것은 쉽지 않은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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