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건 어떤 걸 남기는 일일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서재는 남다른 의미를 담는 공간이다. 최근에 나이가 드신 분들도 책을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깊숙한 심연으로 들아가면서 마음을 담아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는 각자에게 달라지겠지만 서재는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재에 어떤 것이 있을지는 자신이 결정하면 된다. 작가는 어떤 것을 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모를 때가 있다. 강경의 옥녀봉이 자리한 곳에 오랜 시간 새로운 건축물을 만들고 있었다.
강경포구는 젓갈로 유명하며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소금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음식에서 빠질 수가 없었던 식재료이면서 급료로 지불되기도 했었다. 강경을 한 마디로 말하면 소금의 고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강경읍에서 아래쪽으로 더 내려오면 강경옥녀봉이 자리하고 있다. 옥녀봉은 강경을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 아래 강경산 소금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박범신의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역시 제대로 소설 한 줄 사용하지 못하고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린 시기도 많았다고 한다.
강경산 소금 문학관의 건축물 구조의 형태는 대지를 닮은듯하게 만들어져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다 쓰고 나면 언제나 에너지가 모두 없어져 된다. 쓰는 일만큼은 이제 당분간은 안 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일주일쯤 아무것도 안 쓰고 있으면 적적해서 견딜 수 없다. 뭔가 쓰고 싶어 지게 되면 작가의 자격을 가진 셈이다.
강경으로 귀향하게 된 것은 자신의 옛날의 '고향'을 잊을 수 없어서 간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위태롭고 새로운 시간과 공간 속으로 출발해간 것이라고 한다. 그는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고 한다.
야외 전망대에 올라와서 잠시 강경의 포구를 지켜보았다. 포구가 탁 트인 것이 시원스러웠다.
이곳에서 그의 행보와 작품을 찾아 걸어가다 보니 생각했었던 작가의 길이 보인다. 작가들은 ‘쓴다’는 행위 속에 갇힌 죄인이기도 하다. 글이 쓰이지 않을 때, 작가는 절망하며, 글을 쓰는 순간 스스로 좌절한다. 글쓰기를 중단하는 순간 작가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며,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무능을 끊임없이 질책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문학이란 “목매달고 죽어도 좋은 나무”라 말하는 박범신은 항상 위태롭게 보고 가파르게 부딪치며 사는 작가였다고 한다. 현대인의 쓸쓸한 내면, 부조리한 현실과 그 현실을 뒤덮은 욕망, 그에 맞선 순수에의 갈망을 그리는 것은 숙명이다.
이곳에 자신만의 자리를 남긴 박범신이라는 작가에게 사는 일이란 빈 의자 하나 남기는 일이라고 적어두었다. 글은 소금과도 같다. 꼭 필요한데 너무 많아도 적어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찾아서 헤매게 된다. 가장 좋은 소금을 찾기 위해 혹은 가장 좋은 소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