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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17. 2016

인간 실격

사회에서 실격되는 인간이란

해방 이후에 한국이 혼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던 1948년 일본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39살의 나이에 요절한다. 일본 현대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며 혼돈의 시기에 인간의 삶을 논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 사회와 타협하지 못하고 고난의 세월을 보내던 다자이 오사무는 투신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방황을 했다. 도쿄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하고 미야코 신문사의 입사시험에서도 탈락한 그는 결국 다마가와 죠스이에서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동반 자살하는 데 성공한다. 


자살을 말하는 데 있어서 성공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실격은 온갖 억측을 나은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많이 팔리는 소설 '마음'의 뒤를 이을 정도로 많이 팔린 작품 인간 실격을 읽어보면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사람이란 것을 조금은 유추해볼 수 있다.


"저는 술을 마셨습니다. 그 사람한테는 마음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익살 따위를 연기할 마음도 안 나서, 저의 천성인 말 벗고 음산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 잠자코 술을 마셨습니다.


"이런 것 좋아하세요?"


여자는 갖가지 요리를 제 앞에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술만 마실 거야? 나도 마시자." 

가을 추운 밤이었습니다. 저는 쓰네코(라고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기억이 희미해서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함께 정사를 기도한 상대방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저입니다.) 가 시키는 대로 긴자 뒷골목 어떤 초밥 노점상에서 정말로 맛없는 초밥을 먹으면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p 60


한국 역시 여러 가지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한해 5만여 명이 자살한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다른 이유도 아닌 자신이 스스로 끝을 내는 것은 무척 비극적인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배려해주고 챙겨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이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담백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소설 인간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평생을 사랑받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심하고 너무 예민한 사람이며 사랑이라는 것을 받기 위해 시도하다가 실패했을 때 자살을 기도했다. 어떤 이들이 보면 바보 같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사람을 평가하기는 힘들다.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 만들면 된다는 주인공처럼 익살 서비스를 해서라도 사랑을 받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각을 너무나 의식하며 살아간다. 알프레드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처럼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던지 간에 다른 사람의 근본적인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치어질까? 


글쎄 그건 적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상대방이 보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도 있고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즉 거짓말을 일삼으며 자신을 포장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먹히면 그것이 자신의 본모습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만들어낸 이미지와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이미지가 일치할 경우 그 관계는 비교적 오래 지속이 된다. 설사 그것이 꾸며지고 가식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많은 가면을 만들어내고 가면 뒤에 숨어 산다.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진실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인간실격에서 주인공 요조를 바라보는 다자이 오사무의 시각은 긍정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작가 자신은 요조를 보면서 부정적인 자신의 생각을 소설 곳곳에 심어놓았다. 


"재빨리 배반한 거죠. 돈이 이 세상은 돈이면 다지요. 은 삼십 냥, 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받지요. 저는 쩨쩨한 장사꾼입니다. 예,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네, 네, 아, 미처 말씀 못 드렸군요. 제 이름은 장사꾼 유다. 헤헤. 가롯 유다입니다. " - p 162


다자이가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돈이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돈 없는 천민만이 옳다. (중략) 그러나 나는 천민이 아니었다. 나는 기요틴에 매달리는 쪽이었다. 나는 열아홉 살 먹는 고교생이었다. 반에서 나 혼자만 두드러지게 호사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 고뇌의 연감


다자이의 인생은 파멸로 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인간실격은 그 중심에 서 있다. 평생 자기 파멸에 사로잡혀 살았던 다자이는 남보다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는 자체에 대해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다. 일명 금수저로 태어난 것은 죄라는 자세다. 다자이가 믿었던 공산주의가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괴로워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자이의 문학은 한국전쟁 이후에 급속하게 경제발전을 이루던 일본의 수많은 학생들에게 마치 성전처럼 받들여졌다. 


사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바닥에 떨어져 봐야 한다. 그 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떨어져 보면 그 사람 수준이 어떤지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탓한다.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돌려 자신의 문제를 덮으려는 것이다. 

 

정치인을 비난하지만 그 정치인을 뽑는 것은 바로 당신들이다.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것 자체를 괴로워하고 세상이 어떻게 좋게 변할 수 있을지 고민한 다자이 오사무 같은 작가는 괴상한 인간이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 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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