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 50에 대한 본질을 묻는 영화
원더우먼은 말 그대로 다른 힘을 가진 메타 휴먼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여성을 여성답게 아닌 사람의 중심에서 균형을 말하는 인물이라고 할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장은 여성스럽다. 여성스럽고 남성스럽다는 말이 과연 틀린 말일까. 자신의 매력을 잘 드러나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회 시스템은 남성에게 유리하게 진화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에서 유리하게 진화하였다. 그 속에서 적지 않은 남자들이 자신의 입지를 이용해 악용한 것도 사실이다. 지적으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덜 성숙되었다 혹은 그렇게 생각된다는 말은 틀린 이야기다. 누구나 자유의지에 의해 지적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얼마 전 BBC의 운동을 보았는데 연봉에 관한 내용이었다. 남자 임원이 여자 임원에 비해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을 균형을 맞추자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모순이 생겨난다. 50 : 50의 운동을 보면 비교적 안정적이면서 연봉이 높은 일자리에서는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상당수의 힘들고 위험하고 연봉이 적은 일자리에서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강자와 약자 혹은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문제이지 남자와 여자의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다. 여자들은 과연 약자층에서 묵묵하게 일하는 남자들의 일자리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심지어 그들을 외면하고 결혼 상대자로도 올려놓지 않았는가 물어보고 싶다.
영화 속에서 원더우먼은 라틴어를 비롯하여 오스만어와 수메르어까지 능숙하다. 참고로 영어는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의 하나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지만 화학식도 익숙하고 온갖 전투기술도 능숙한 사기 캐릭터에 가깝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남자는 부가적인 인물 혹은 약자로 보이기도 한다. 감성적인 관점으로만 본다면 인류에 대한 사랑이 가장 많은 히어로 중 하나가 원더우먼이다. 수천 년을 살아왔지만 생명에 대한 존중이 그녀에게는 자리하고 있다.
원더우먼은 그녀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아마존에서 유일하게 신의 손을 빌어 태어난 마지막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의 혼외자식을 의미하는 데미갓과는 또 결이 다르다. 그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약하다. 약하기에 위대해질 수 있다는 모순이 있다. 그녀에게 트레버 대위가 난 오늘을, 당신은 세상을 구하라는 말은 약하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약한 자만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고 그것은 비단 신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필자는 갤 가돗의 원더우먼 시리즈가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진실의 힘과 여자들의 에너지를 잘 그려내기 때문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