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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22. 2021

매트릭스 : 리저렉션

깨달음을 선택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지금 한참 떠오르는 핫이슈인 메타버스를 잘 그려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화자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수학적인 계산을 하다 보면 매트릭스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매트릭스(행렬)는 수학적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짤 때도 자주 사용이 된다. 일상적인 패턴으로 만들어서 인크루드 시키면 프로그램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영화 속 매트릭스는 가상세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 환경이라는 것이 편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쉽지 않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은 지난 3부작 시리즈로 끝날 줄 알았던 세상이 다시 열린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네오와 트리니티가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네오는 매트릭스라는 게임을 성공적으로 론칭시킨 회사의 주역으로 살아가고 트리니티는 여전히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간다. 이 둘의 에너지는 매트릭스의 기본 세계를 지탱해주는 규칙의 핵심이기도 하다. 요즘의 정치계나 일명 학벌, 자본 등이 사람의 가능성이나 행동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매트릭스 속의 요원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게 한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실재인 줄 알았던 현실 세계가 사실은 컴퓨터가 만든 가상 세계임을 알게끔 하는데 빨간 알약이 등장한다. 세상을 안정적으로 살아가면서 그들의 많은 규칙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들은 파란 알약을 원한다. 사람이 깨닫게 되는 데에는 시간의 차가 생기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시간의 차를 인정할까. 한 번의 입시 혹은 사는 곳과 환경에 규정지어지면 아무리 나중에 깨달아도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매트릭스 속의 일명 창조자라고 하는 존재는 사람들이 깨닫기를 바라지 않는다. 불공정한 룰이라도 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은 제거해버린다. 네오는 다시 한번 깨닫기를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오직 한 가지 사랑하는 트리니티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고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개봉한 매트릭스는 대사가 정말 많다. 혹시나 매트릭스 속 세상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엄청나게 설명을 해준다. 

지난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는 남자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나왔다면 이번에는 트리니티가 네오를 구하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감독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어서 그런지 몰라도 여성이 더 강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남성은 보조적인 사람으로 그려진다. 세상에 확고부동한 것은 없다. 항상 변하고 바뀌고 세상에 적응해간다. 확고부동한 것을 원하는 것은 기득권들뿐이다. 돈을 원하고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잡히지도 않을 신기루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잃어버린 채 이들을 뒤쫓아가는 좀비 같은 사람들을 보면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마치 영화 속 세상이 가상 같지만 세상 모든 것은 이진수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이진수가 입자를 가지고 있기에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뿐이다. 인간 역시 전기적인 신호로 움직인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감정이며 사랑이라는 것이다. 전기적인 신호로만 해석하기가 쉽지가 않다. 부활이라는 의미의 리저렉션’(Resurrection)에는 지금까지 나온 영화의 장면을 모두 넣은 것처럼 데자뷔가 자꾸 일어난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매트릭스의 향수를 가진 사람에게는 조금은 색다른 매력을 줄 수도 있고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게임처럼 혹은 메타버스를 구현해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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