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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청주에 자리한 신채호의 사당과 묘소

김치를 담가보지 않았더라도 무를 한 번쯤은 잘라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무를 자르듯이 세상일이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은 그렇게 자르듯이 구분되지는 않는다. 이 시대의 교육은 대체 무엇을 가르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렇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매사에 경중 완급이 있는데 아무 의미 없이 체면으로 인해 후회하는 일을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비판하기는 너무 쉽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비판하면서 명성을 얻을 수 있지만 대안으로 인해 명성을 얻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며 그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보다 쉬운 일을 선택하며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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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는 대전에 있지만 묘소는 청주에 자리하고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문무에 능했던 이순신 장군을 일제강점기를 이겨낼 인물로 부각한 사람이기도 하다.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사람인데 지금의 교육 관점은 점수로 줄 세우기지만 인성이 바탕이 되지 않은 가운데 배움은 오히려 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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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글을 남겼다. 비단 역사뿐만이 아니라 배움을 통하면 현실적인 감각을 키우고 어떠한 압력이나 위기에서도 가장 최적의 선택을 할 수가 있다. 단재 신채호는 1870년생으로 박은식과 더불어 민족사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의 3대 영웅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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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묘소가 자리한 곳에는 신채호 기념관과 신채호 사당, 신채호 동상이 있는데 신채호 기념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운영되고 있지 않다. 대신 신채호 사당은 열려 있다.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에서 출생하였고, 충청북도 청원에서 성장하였으며 이곳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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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옳은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비판과 지적은 쉽다. 함께 걷는 길은 만드는 것이 어렵다. 그냥 잘되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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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으로 들어가 본다. 근대역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 단지 신채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지나치게 믿어서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거나, 세상 일에 무리하게 끼어들어 생각지도 못한 화를 입기도 한다. 이는 바로 코앞만 볼뿐 그 너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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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의 초상이 사당 안에 자리하고 있다. 집안은 본디 양반이었으나 경제적으로 빈한하였던 단재 신채호는 1897년 할아버지의 소개로 수구파 대신 신기선(申箕善) 문하에서 공부하였다는데 신기선의 충남 목천木川 본가의 서책을 빌려 읽으면서 유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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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는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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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서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로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는 그의 유명한 민족주의 사관을 극명하게 이론화하여 천명하였다. 일본에 의해 감옥에 갇힌 단재 신채호는 1928년 8월 옥사할 정도로 조사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건강이 악화된 후 1936년 2월 21일 오후 4시 20분 감옥의 얼어붙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 채 홀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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