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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4. 2016

하이라이즈

삶의 피라미드

위에서 아래를 내려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를 바라보기보다는 아래를 바라보는 것을 선호한다. 최근에 삶의 양극화가 심해져서 그런지 이런 류의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는 듯하다. 생태계만 피라미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가 제공되는 듯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에 문제가 된 고시 폐지 문제도 국민에게 법의 공명정대함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성공 기회 측면으로 접근했기에 국민에게 공감대를 사지 못했다. 


벼랑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면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 테고 톰 히들스턴의 영화 하이라이즈는 난해한 영화다. 호수 주변에 세워진 초고층 건물 하이라이즈는 유명 건축가인 로열에 의해 설계된 최첨단 주거공간으로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상층에는 고소득의 높은 지위에 속하는 계층이 가운데층에는 중산층이 살아간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닥터 랭은 하이 라이즈의 25층에 입주하여 살아간다. 상층과 하층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상층에 사는 사람들은 완벽해 보이지만 괴팍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국민들이 개, 돼지라고 칭한 누구처럼 상층에 사는 사람들은 아래층 입주민을 하층민이라고 칭하며 대놓고 무시한다. 

무미건조하게 살던 랭의 종료 의사이자 하이 라이즈 37층에 사는 먼로가 같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하이 라이즈에 사는 사람들은 평온하기만 하다. 상층과 하층에 살던 사람들의 갈등은 비극으로 치닫게 되고 완벽해 보였던 시스템은 허울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이라이즈의 삶은 자본주의의 축소판으로 더 좋은 세상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곪아가고 썩어 들어간다. 그러나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이 바뀔 뿐이다. 

우리가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는 고위공무원, 의사, 변호사, 검사 같은 직업은 사실 상층이 아닌 애매한 중간층에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들 사회에 소속되길 원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달려간다. 거칠게 상층을 향해 달려가는 하층민의 대표 와일더와 상층을 대표하는 로열과 대립각을 세우지만 닥터 랭만큼은 무심할 만큼 냉정을 유지한다. 함께 잘 사는 것보다 사람을 소모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상층의 사람들은 지금도 저 위에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인간이라도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이라이즈는 무척 불친절하지만 냉소적으로 이 사회의 모순을 잘 드러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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