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속도

청주 옥화구곡 길에서 만나는 겨울 색채

가끔 사회의 변화나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볼 때가 있는데 이유 없이 뛰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왜 뛰는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뛰니까 뛰는 것이다. 누가 산다고 하면 사고 누가 한다면 나도 하다 보면 정작 자기가 한 것은 없다. 행복의 속도를 잰다면 어느 정도 일까. 사람들은 그 속도를 최대한 빠르게 하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된다.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주변의 시야는 좁아지고 이 길의 방향성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속도가 갑작스럽게 줄어들면 그 순간 자신의 제어력이 사라지고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놓인 자신을 보며 공황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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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시를 항상 열면서 돌아다니면 작은 변화에도 눈길이 간다. 마음의 변화를 제외하고 중요한 것은 모두 직접 보고 결정해야 한다.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은 리스크를 알 수가 없다. 직접 자신이 걸어보고 겪어보고 체험해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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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옥화구곡은 속리산에서 발원해 청주시를 지나며 굽이치는 달천을 따라 형성된 용소, 천경대, 옥화대, 금봉, 금관숲, 가마소뿔, 박대소 등을 일컫는데 그중에 금관숲은 사람들이 캠핑을 하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미원면 금관리의 개울가에 있는 2천4백여 평의 숲은 한여름에도 햇빛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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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물어보면 청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청주에는 이런 산촌생태마을이 적지가 않다. 옥화 구곡 중 옥화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옥화구곡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이자 예언가인 서계 이득윤(1553~1630년)이 즐겨 찾던 곳인데 개인적으로는 제2곡 후운정이 남겨 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648년 조선 후기 문신 홍석기가 그 지역에 최치원이 머물렀다 하여 그 뜻을 잇고자 지은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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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서 조금 분위기는 다르지만 옥화 제8경이라는 신선봉이다. 해발 630미터인 이 봉우리에서 옛날 신선이 놀았다 하여 신선봉으로 불리는 곳이다. 바위 밑에 흐르는 물소리가 다르게 들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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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도 살펴보면서 가본다. 어암, 가마소뿔등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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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이라 강가의 정자, 정자 위로 구름이 떠가는데,

내 마음 기쁘고 즐거워 그대 따라가고 싶네.

물가에 해는 졌는데 부질없이 서성이노라니.

귀 씻은 무리들과 인연 된 일은 들리지 않네.


'옥화구곡' - 이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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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어암은 제3곡으로 물고기를 잡는 바위, 혹은 배를 묶어 두던 바위를 뜻한다고 한다. 삼곡이라 겨울의 차가운 냇물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린 흰 눈으로 인해 분위기만큼은 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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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구곡 중 옥화 제7경인 가마소 뿔은 아픈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막 혼례를 마친 신랑과 신부가 이곳을 지나다가 신부의 가마가 흔들리다 그만 물속에 빠져 죽었는데 이를 애통해하던 신랑도 함께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가 수영을 일찍이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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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화구곡 혹은 옥화9경이라고 불리는 끝자락에 오니 거목과 함께 어암리 탑신당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금관초등학교 초대교장이 이곳의 지형이 배 모양이라 하여 돛대 모양의 돌탑을 쌓아서 균형을 맞춘 것이라고 한다. 전력질주를 할 수 있는 것은 잠깐뿐이다. 인생의 긴 시간 속에 행복의 속도는 균형 있게 가는 것이 좋다. 어쨌든 끝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장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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