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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l 26. 2016

부산행

관객 좀비를 만드는 영화

스크린 독과점을 비롯하여 수많은 뒷말을 남기는 영화 부산행은 부산으로 가는 열차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한국의 영화시장이 작지는 않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영화에 대한 쏠림 현상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심각하다. 적당하게 신파 좀 집어넣고 그냥 볼만한 수준이면 1,000만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인간사의 군상을 담았다고 하지만 너무나 뻔하디 뻔한 스토리이다. 임산부와 순수한 소녀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머 그런 것까지 좋다고 하자. 살아있는 사람과 생채 신호는 있지만 죽어 있는 사람과의 대립보다 더 극심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립구도가 이 영화의 핵심처럼 보인다. 


연가시에서도 보았듯이 심각한 일이 발생했을 때 국가 재난 방재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마 실제 일어나도 재난 방지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만큼이나 보건 당국이 강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나마 그것도 부처 간 이기 주위로 인해 나눠서 관리하니 말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살고 싶은 사람들 혹은 지키고 싶은 사람과 그들의 목숨을 취하려는 좀비들과의 사투가 부산행의 메인 줄기이다. 


지금은 훅 가버린 것 같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돈으로 리스크는 낮게 수입은 많이 가져가는 직종에 근무하는 펀드 매니저 석우는 어린 딸 수안과 부산을 찾아간다. KTX로 내려가지 부산까지 얼마 걸리지 않지만 그 사이에 갑작스럽게 창궐한 듯한 질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변해간다. 상화와 그의 아나 성경, 영국, 진희가 KTX내의 어벤저스팀이다. 할리우드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좀비라는 콘셉트를 끌어와서 적당하게 그리고 여기에 갑작스러운 플래시백 장면을 넣어서 진부 하디 진부한 감상주의적인 색채를 집어넣는다. 

요즘 나오는 영화에서 여성이 꽃이 아닌 주체적인 인물이 되어 상황을 직접적으로 개척하는 것과 달리 부산행에서는 철저히 보호받아야 될 대상으로 나온다. 마치 젠틀맨 다운 설정처럼 보이지만 이것 조차 불편하다. 거의 아무런 역할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존재에 가깝다. 좀비보다 더 무시무시한 인간들의 이기심과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하는 사람들의 대척점은 이미 예상했다. 

부산행에서 그나마 건질 것이 있다면 세월호를 연상케 만드는 장면이다. 학생들이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상황에서 성인들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언론이나 정부는 대중들에게 진실은 알려주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혐오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상층부에서 국민들을 다루기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분노를 우리들에게 씌워버린다. 우리들은 양분되어 다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앞에는 적당한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싸우기를 재촉한다. 그들이 이끄는 대로 싸우다 보면 왜 싸우는지 대체 왜 상대방을 미워해야 되는지 알지 못한 채 매몰되어 간다. 


사회성을 담았다고 하더라도 부산행은 너무나 많은 스크린을 독과점했다. 게다가 영화판에도 대마불사가 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많이 본다고 하면 좀비처럼 극장을 찾아가 덮어놓고 그 영화를 선택한다. 좀비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도 그 영화 봤어?라는 질문에 그냥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극장으로 가는 것이다. 게가다 관객수는 초반부터 조작된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매스컴 플레이를 하면서 관객 카운팅하고 있다. 


사회에 불만이 있는가 부산행을 보고 풀어라.. 그리고 이 사회에 다시 순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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