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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9. 2022

대의 민주주의

스스로의 선택은 맞는가를 묻는 함의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모아 선택을 하는 것은 바로 정치인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가 모여 누군가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가까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데 심지어 제대로 된 생각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떤 집단이나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쉬울까. 그런 문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로 대의민주주의다. 누군가를 뽑을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표를 모두 모아 그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 뽑아야 될 직책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자체와 국회의원, 대통령만을 뽑을 수 있다. 대의 민주주의가 손끝과 발끝까지 가는 모세혈관처럼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국민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과연 누구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보편적인 국민을 생각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국민은 특별한 계층이나 직업군 혹은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당장 국회의원들의 출신들만 보아도 그렇다. 수많은 직업군과 지역이 있지만 특정계층이나 나이와 직업군에 쏠려 있는 경향이 다분하다. 왜 아나운서나 기자 출신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아는 것은 그냥 아는 것뿐이지 이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해한다는 것은 아는 것도 포함을 한다. 이제 지자체장과 의원을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진정한 대의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뽑는 선거보다 지역을 대표하는 지자체장과 의원을 뽑는 선거에 있다. 우리의 삶에 더 깊숙하게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치는 아바의 노래 The Winnder Takes It All처럼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서는 안된다. 어떤 것은 승자와 패자와 갈릴 필요도 있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과 정치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그냥 누군가가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한국의 정치는 그렇게 발전해오지 않았다. 그나마 대의 민주주의는 1987년에 이르러서야 자리를 잡았다. 


대의 민주주의의 약점은 잘못 선택하였더라도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모 정치인이 말한 것처럼 누군가를 선택하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건 격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선택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스스로의 선택이 맞는가를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질문을 던지지 않고 그냥 보기 싫다던가 언론이 포장하던가 숨긴 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대의 민주주의는 왜곡되고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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