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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여행

한국 원림의 기원인 강진 백운동 원림

코로나19 이전에 사람들의 여행은 점의 여행이 많았다고 한다. 점의 여행은 지역마다 유명한 여행지나 즐길 것을 위주로 보는 여행이다. 점의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지의 매력을 알기가 어렵다. 점과 점 사이에 많은 변화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올레길이 인기가 있는 것은 점이 아닌 선의 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화를 보지 않고 그 대상만을 보는 것은 기억을 오래도록 지속시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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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여행은 시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듯이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준다. 선이 하나 만들어지면 여러 개의 선이 삶의 면을 만들어준다. 공간이 생긴 후에는 어떤 것을 채워 넣어도 그곳에 머물러 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전남 강진의 백운동 원림을 찾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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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남해의 끝자락에 있는 지역이라 제주도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후도 비슷하지만 주변에 있는 돌들이나 나무, 꽃이 중부지방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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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이 이곳에 머물렀던 이유가 무엇일까. 나무와 나무가 연결되어 있고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 이백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별천지에 인간 세상이 아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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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이 대부분 떨어졌지만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동백꽃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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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문화는 조선 후기에 와서 다시 자리잡기 시작하는데 백운동 별서 근처에는 운당원 왕대나무 숲이 있는데 지금도 이곳에는 야생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야생 차나무 잎들은 자체적으로 향을 풍기지 않지만 은근한 불에 달이면 그 향이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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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별서정원은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일컬어지며 조선 중기의 선비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시간 강진에 유배 중이던 정약용은 이곳을 다녀간 뒤 그 아름다운 경치에 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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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곳은 인위적인 것을 최소화했기에 자연스럽다. 자연스럽게 남겨진 공간에 아름다움이 더해져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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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원의 특징을 가진 백운동에는 별서정원이 간직하고 있다. 조선 중기 처사였던 이담로가 은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최근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가 2001년 다산 정약용이 제자인 초의에게 그리게 한 백운동도가 발견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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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는 졸졸졸 흘러내려오는 물이 백운동 별서정원의 조그마한 집을 휘감아 흐르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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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샘낸다는 꽃샘추위가 찾아왔지만 이곳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얀불긋한 색들이 나무들이 별서정원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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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의 여행보다 선의 여행은 경험이 끊기지 않아서 좋다.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올만한 곳이다.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계곡에 눈이 머물다가 봉우리로 시선을 옮기며 경치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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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핀 꽃이 마치 눈으로 먹는 팝콘 같아 보인다. 달달하면서도 살짝 짭짤함이 묻어 있다. 다산 정약용은 백운동 원림의 12 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호남의 유서 깊은 전통 별서의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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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한옥의 대청에 올라서서 비어 있는 다기를 보면서 마치 차를 마시고 있는 것처럼 상상해본다. 이곳에서 술을 마셔도 너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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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나무 숲길을 통해 걸어서 올라가 본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백원동 별서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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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별서정원은 참으로 사람 세상의 뛰어나기 그만인 곳이라 할만하다. 앞에는 유상곡수의 아름다움이 있고 뒤에는 무림수죽이 있어 봄에서 여름이 되는 사이에 한가로이 거닐면서 풍경을 감상하면 참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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