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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28. 2022

데블스 에드버킷

탐욕과 파멸은 평온한 일상의 뒤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얼마나 탐욕스러워질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조인들만큼 탐욕을 대표하는 직업이 있을까. 이들의 탐욕을 잘 보여주는 데블스 애드버킷이라는 영화가 준 느낌은 아직까지 생생할 정도로 강하다. 데블스 애드버킷과 유사한 영화는 존 그리샴 원작의 톰 크루즈 주연 야망의 함정이라는 영화로 느낌이 매우 비슷하지만 더 리얼하다. 


분명히 법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대형 로펌회사는 불법을 합법처럼 생각되게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전적으로 여유로워지는 사법고시나 로스쿨 출신들이 정의 같은 것을 지키려고 법조계에 입문하는 것일까? 결국 돈과 어느 정도의 명예를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데블스 애드버킷은 자신의 소신과는 상관없이 이기고 돈을 벌기 위한 어떤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 캐빈은 자신이 살고 있던 곳을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한국의 서울이 그렇듯이 뉴욕 역시 미국의 돈이 모이는 곳이다. 최근에는 세계화가 끝나가면서 중심은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옮겨가고 있다. 돈이 모이는 곳에 탐욕이 있고 일자리가 있다. 피라미드 밑에 있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기 때문에 돈의 정점 역시 높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그런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그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온갖 공직에서 고위직을 지내다가 왜 로펌으로 가고 각종 이권사업이 연결되어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일까? 고위직에 있었던 연줄이 다른 회사로 가면서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사 혹은 동료였을 사람의 부탁을 좋은 것이 좋다고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판검사로 재직하다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전관예우가 있었는데 그걸 막는 법이 있지만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얼마든지 스스로와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다. 과거 중국의 역사만 보더라도 무측천의 시대에 자신의 이득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고발하던 혹리 내준신, 바른말을 하는 충신들을 탄압하던 명나라의 환관 왕진, 사람들에게 수많은 여자와 재물을 상납받고 권력을 휘두르던 원나라의 승려 양련진가, 황천의 명을 받아 왕위에 올라갔다고 하며 사람들 죽이기를 즐겨하던 전진의 황제 부생 등 나열하면 끝도 없다. 이 사람들 역시 데블스 애드버킷의 악마 존 밀튼이 다른 모습으로 꼬드긴 것은 아닐까?  

악마가 악마의 자손을 잉태시키기 위해서 캐빈을 지지치 않고 꼬드기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돈을 주고 그다음에는 성공을 준다. 여기에 매력적인 여자를 선물함으로써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욕망의 늪에 빠지게 하려고 한다. 문제가 되는 어머니와 와이프는 천천히 망가트려가면서 악마의 본성을 조금씩 노출시켜간다. 


법정에 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법이라는 아주 매혹적인 도구를 이용해 공식적으로 누군가에게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옥죄고 기득권자의 권력을 지켜주는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를 못 믿기 때문에 만든 것일지 모른다. 법 뒤에 서서 명예를 얻고 권력과 돈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대화시킨 데블스 애드버킷 속의 캐빈 이야기는 평온한 일상의 틈새에 탐욕과 파멸이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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