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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2. 2022

보편적 차별

사실 우리는 모두가 차별을 원한다.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들의 이동할 권리나 비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기 위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하면서 차별에 대한 이슈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언론이나 정치인들 누구도 본질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위한 관점과 그걸 위해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혀도 된다는 것이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보편적 차별금지법이 국회에서 계류된 지 오래되었다. 보편적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이슈만 부각될 뿐 더 중요한 다른 것은 다루어지지 않는다. 보편적 차별금지법은 사실 대다수의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차별을 받기를 원하고 차별을 하기를 원한다.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비장애인이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이, 성별, 종교, 학벌 등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회인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차별되기 위해 돈을 쓴다. 돈을 썼는데도 차별받지 않는다면 무척이나 화가 날 것이다. 국가도 모든 것에서 차별을 한다. 배려라고 하지만 그 배려는 누군가에게 차별이 된다. 청년 주택이나 신혼부부들을 위한 배정이나 청년 적금은 과연 차별이 아닌가. 


면접을 당해보기도 했고 면접을 하기도 했지만 차별은 어느 곳에 나 있었다. 차별이라는 기준은 정말 모호하다. 어떤 것이 차별인지 아닌지는 사회적 기준도 있지만 자신이 그렇게 느끼면 차별이다. 부모들이 아이 때부터 조기교육을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학교나 좋은 직업 같은 허울은 결국 남들을 차별하기 위함이거나 차별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기득권들이 가장 싫어하는 법안 중 하나가 바로 보편적 차별 금지법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주요 대기업을 보면 어느 지위를 넘어서면 특정학교와 지역으로 채워진다. 능력 따위는 상관없다. 어차피 그 정도 규모의 회사가 되면 어느 누구를 넣어놔도 시스템은 돌아간다. 어설픈 평등론자가 들어와서 차별의 성에 금이 가게 하기는 원하지 않는다. 


당장 취업사이트나 각종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의 모집요건을 보면 나이, 성별, 지역 등에 제한을 둔 것을 볼 수 있다. 지역마다 지원하는 청년창업이나 거주요건은 나이 제한이 있다. 그건 차별이 아닌가. 나이는 과연 시간적인 것에 국한되어야 하는 게 합리적인가. 과거에 정해놓은 기준은 과연 지금도 유효한가. 전국적으로 돌아다녀보면서 만난 학교나 마을 입구 등에 걸려있는 플래카드의 문구들은 차별을 당연시하는 사회의 본모습이다. 


사회를 하나의 잣대와 성공으로 줄 세워놓는다면 모든 것은 차별로 설명될 수 있다. 인권을 이야기하고 약자의 편에 서 있다는 사람들조차 그들이 보는 차별의 시각은 딱 거기까지다. 자신이 아는 차별은 차별이지만 다른 곳에도 존재하는 차별은 느끼지 못한다. 필자는 이 사회가 과연 차별적 감수성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 당해봐야 비로소 보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차별을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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