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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3. 2022

범행의 동기

가평 계곡 익사 사건 미스터리

이제 살인사건이 조금 더 복잡해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부검을 하면 나오는 모든 증거만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사건들이 많다. 일명 정확적 증거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될 때가 되었다. 이미 정황적 증거를 가지고 범죄를 추리하는 이야기는 셜록홈스에서 그려졌다. 이는 오늘날의 프로파일링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매우 우발적인 범행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범죄는 범행의 동기가 있다. 오랜 시간 감정의 골이라던가 경제적인 이유와 사적인 탐욕 등은 무르익으면서 범죄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가평 계곡 익사 사건 미스터리라는 방송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관계의 건전성이다. 연인관계라고 나온 피해자인 남자와 가해자로 생각되는 여자의 모습은 무척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충분히 숙성될 시간이 있었고 관계를 끊어야 될 시점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그냥 지나쳐버렸고 결국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했다. 


사건의 시작은 남편이 죽었는데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여자의 글 때문이었다. 사망보험금을 받지 못한 여자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글을 남긴 것이 결국 사건의 본질로 가게 되는 시작이 되었다. 수영을 잘 못한다고 추정되는 피해자는 가평 계곡이라는 곳에서 다이빙하다가 익사당하게 된다. 여자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불륜관계였다는 사실과 그들과 같이 가평 계곡을 갔다는 것은 상식적이지는 않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스스로를 포장하고 숨겨서 가려질 수는 있어도 그 주변 사람은 가려지지 않는다. 그 사람은 착하고 사랑스럽고 믿을만한 것처럼 보이는데 주변 사람은 경박하고 예의 없고 허황되게 산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거짓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다. 아니면 그걸 감내하면서도 사는 합리적이지 않은 관계라는 점이다.  


피해자로 보이는 남자의 성장기는 잘 알지 못하지만 방송에서의 모습을 보면 사람에 대해서는 의존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남녀노소를 떠나 사람은 스스로가 서지를 못하면 어디선가에서 균열이 생긴다. 성인이 되어 생긴 그 균열을 메울 수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순간 의존성이 생긴다. 그 균열은 온전히 스스로가 메울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누구에게든 글을 보여주며 그 피드백을 유의 깊게 살펴본다. 그걸 통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우선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사람처럼 보여도 곁에 두지 않는다.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필자 역시 똑같다. 스스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을 해야 하는데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성찰하는 삶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겉 넘기도 한다. 


가평 계곡 익사 사건을 보면서 명확하게 말할 수도 있지만 영상 하나나 기사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만 남자와 여자의 성향이나 범죄의 동기는 추정할 수 있었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을 보고 평가하기도 하고 판단을 내려버린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스스로가 얼마나 진실되었는지 그리고 그만큼의 노력을 했는지 볼 필요가 있다. 


범죄의 결과만을 가지고 범죄자를 특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범행의 동기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왜 우린 이런 사건을 끊임없이 보아야 하는지 혹은 예방하지 못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수사를 하고 기록을 남기고 공개할 수 있는 자료를 공개해서 사람들이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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