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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8. 2022

천장지구

불나방 같은 젊은 혈기는 영화 속에서 낭만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 입구에서 성냥팔이 소녀에게 성냥갑을 하나씩 받고 이 세상으로 나온다. 이 성냥은 하나씩만 빼서 쓸 수 있으며 몇 개가 들어가 있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다. 이른바 기회의 성냥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객사하지 않고 평균의 수명을 살아간다는 가정 아래 젊음은 기회의 성냥이 조금 더 많다고 생각하면 된다. 젊음의 매력은 막지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시도해보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지고 있는 기회의 성냥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특이한 것은 성냥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릴 때 그렇게 감명 깊게 볼 영화는 아니었는데 그때는 멋있어 보이는 영화 유덕화, 오천련 주연의 천장지구는 1990년에 개봉하여 중국 영화 흥행의 정점을 찍은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냥개비를 잘근잘근 물어가면서 총질만 해대던 주윤발 영화와 달리 마초 영화이지만 나름 감성을 담으면서 여성 관객까지 흡입한 영화가 바로 천장지구였다. 

일명 알차라고 불리는 오토바이를 유행시키고 청자켓까지 유행시킨 유덕화는 이후 제2의 전성기가 오기까지 이때가 아마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짙은 눈썹에다 부리부리한 눈의 유덕화는 근래 들어 묵직한 분위기가 풍기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정도의 건달 느낌이 강한 배우였다. 폭력적이면서 터프한 행동으로 여성을 외면하지만 결국 그런 무뚝뚝한 남자가 여성을 만나서 순정적인 남자로 변신하는 것은 모든 여성이 꿈꾸는(?)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이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는 거칠지만 자신에게만은 부드러운 남자는 매력적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마 한국 드라마에서 기억상실과 출생의 비밀이 없다면 드라마를 쓰기가 아주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 중국 영화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없지만 당시 홍콩영화는 말 그대로 신천지였다. 그중 천장지구는 온달왕자 스토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천련이 연기하는 죠죠의 집안은 잘살고 아화는 그냥 거리의 건달일 뿐이다. 이루어지기가 아주 희박한 이들의 조합이나 다름이 없다. 이 스토리 뒤로 영화의 매력을 더하는 것은 음악이다. 비욘드의 미증후회, 회색궤적,원봉영의 천약유정은 천장지구와 너무 매칭이 잘되는 음악이다.  

아화는 길거리 건달로 살면서 때론 도둑질도 하던 인물이다. 보석상을 털다가 아화는 길거리에서 죠죠를 인질로 잡고 탈출하게 된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지만 설정상으로 몇 번 구해주면서 결국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인해 아화를 사랑하게 된듯한 느낌이다. 아화는 일부러 죠죠를 자신의 여자를 만들려는 요량이었던지 아니면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위험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에 끌어들이고 아무렇게나 한 행동인데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보이는 액션들을 취한다. 한마디로 지랄 같은 남자지만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니 따라 하면 찾아오는 것은 경찰의 손길이다.   


흔하디 흔한 조직 이인자 일인자 몰아내기 사건만 없었다면 숨어서 잘 살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어떻게 영화가 되겠는가? 그놈의 의리 때문에 아화는 일인자를 위해 싸움을 하게 되고 마침 머리를 다치게 된다. 멋지게 쇼윈도를 깨고 흰색의 예복까지 입은 이들 둘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쌍처럼 보였다. 게다가 죠죠가 눈치챌까 봐 소리 없이 시동을 켜지 않고 내려오면서 시동을 거는 장면은 이영화의 백미 중 하나이다. 젊음은 불나방처럼 살아가는 것이 그 시대의 로망이었을지도 모르고 지금은 그 영광을 잃어버린 홍콩의 그림자라는 생각이 든다.


기회의 성냥개비가 남아 있을 때 조그마한 희망의 불꽃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불을 켜는 것도 켜지 않는 것도 혹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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