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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8. 2022

게이머

메타버스 시대에 찾아올 디스토피아 세상

우리의 육체는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사회에서 매겨지는 가격이 있다.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직업들이 있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외면을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가치를 가지고 살 수는 없다. 만약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 지식이나 기술도 없고 자산도 없는 데다 육체 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선택의 폭은 좁다. 남자라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일이나 플랫폼 노동자로 부속품처럼 사는 방법뿐이 없고 여자라면 자신의 몸을 이용한 산업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인간은 존엄한 가치를 지향하려고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따뜻한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주식을 하기 때문에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도 국내 게임회사들이 어떤 게임을 만드는지는 살펴본다. 이제 게임은 20세기에 생각했던 게임의 영역을 벗어나 자극적이고 가상이지만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밟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돈이 따라다닌다. 너무나 자극적이고 너무나 자본주의적이어서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여성단체에서 반대를 하고 관련 시설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도 아무런 기술도 없이 돈을 쉽게 벌고 싶은 사람의 욕구를 채워줄 시장에서 여자는 상품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만약 지금 같은 형태가 아니라 너무나 실제 같은 메타버스 게임이 나온다면 아마 게이머 같은 영화 속 세상이 될 가능성도 높다. 다른 능력이 없거나 범죄자 혹은 무능력자라도 게이머에서는 자신의 몸을 팔고 누군가에게 돈을 받는다. 특정 시간 동안 다른 게이머에게 조종당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게이머는 일반적인 사회의 통념상 하지 못했던 일들을 게이머 속 세상에서는 할 수 있다. 대신 회사와 그 조종당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면 된다.  

게이머는 300에서 주목받았던 연기파 배우 제라드 버틀러가 주연을 맡았다. 300에서 깔끔해 보이는 근육 대신에 버틀러는 근육을 과도하게 키우지 않으면서도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튀어나온 혈관을 자랑하기도 했다는 영화 게이머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 자극적인 유흥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이성과 아무렇지 않게 성적 관계를 맺는다. 


게이머 속 게임 세상은 미국 사회를 대변하는듯한 자본주의의 극한을 보여주는 것 같아 영화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자극적이지만 이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참여한다. 플랫폼 세상에서 사람은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배달하고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의 빈 곳을 대신해준다. 하물며 게임 속에서 자신의 몸을 제공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사람들은 왜 가상현실이나 리니지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결국 현실에서의 불가능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는 힘없고 선남선녀를 만나지도 못하고 인정도 안 해주는 사람이지만 가상현실에서 영웅이 될 때 보상심리가 엄청나게 작용한다.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RPG 게임 회사들이 먹고살고 있고 대표들은 아주 잘살고 있다. 게이머에서는 말 그대로 두 가지 가상현실이 존재하는데 세컨드 라이프 같은 소사이어티라는 가상현실과 리얼한 레인보우 6 같은 게임의 슬레이어즈가 바로 그것이다.


이영화에 주된 주제는 소사이어티라기보다  차세대 온라인 FPS게임 '슬레이어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미래의 사형수들이나 죄수들을 활용해서 실제로 게임 속에서 활용하게 된다. 나 넥스라는 시스템에서 '나노셀'칩을 심게 되면 인간은 뇌가 조종이 가능한 상태로 바뀌게 된다. 물론 영역은 정해져 있다고 하지만 인간의 모든 오감을 조종하고 디테일하게 활용한다. 

2009년에 개봉한 게이머는 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남들보다 잘 나가야 인정받고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말초적인 부분이 점점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많은 힘을 가지게 될 때 결국 사회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그려내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의외의 곳에서 인기를 얻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이해가 가지 않을 사회현상이나 정의라던가 옳고 그름의 이야기를 누가 단적으로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자신에게 남는 것이 몸뿐이라면 선택지가 점점 없어지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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