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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07. 2022

앰뷸런스

누군가를 위한 곳에 정의도 불의도 없다

정의라던가 옳고 그름에 대한 관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답이 없어 보인다. 수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TV에서는 범죄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는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란 고민은 누구나 하지만 스스로 고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어른이 된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몸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자라지만 생각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냥 자라지는 않는다. 단 하나의 명언이나 문구 속에 모든 것이 담길 때도 있지만 겉으로만 읽으면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영화 앰뷸런스는 어떤 사람이 추구하는 욕심과 탐욕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고민도 하지 않는 범죄자를 통해 극한 탈주극과 사람의 선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생 역전을 위해 완벽한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동생 `윌'은 함께 자랐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인생을 바꿀 위험한 삶을 선택한다. 

한 번 잘못된 선택은 선택의 폭을 계속 좁히게 만든다. 한 번 좁혀진 시각은 쉽게 넓어지지 않는다. 즉 선택을 하면 할수록 막 다른 길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분명히 범죄자인데 불구하고 자신들이 살기 위해 총상을 입은 경찰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상황 속에서 여자 구급대원만이 중심을 잡고 있다. 대니와 윌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형 범죄자다. 대니는 그런 아버지의 성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액션 영화의 재미는 다 갖추었지만 살 생각이 아예 없는 범죄자와 살아야 하는 범죄자 그리고 이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여자가 좁은 공간에서 사투를 벌이게 된다. 분명히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출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욕심은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은 쉽게 내릴 수가 없다. 누구나 욕심이 있다. 욕심이 있기에 사람은 발전의 원동력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면 옳고 그름을 넘어서 자신을 결국 파멸로 몰고 가게 된다.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본다면 스스로가 어떤 욕심으로 인해 수많은 기회를 놓쳤는지 돌아볼 수 있다. 이 둘의 종착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 둘은 그 종착지가 생각했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결과를 그들만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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