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방패

복원되어가는 금강의 방패라는 서천읍성

최근에 북한이 시험하고 있는 ICBM이나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보더라도 국가를 지키는 방패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격무기가 창이라면 방어무기는 방패에 해당이 된다. 방패는 지정학적으로 만들어지도 하지만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의 동쪽에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공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한반도를 지정학적으로 본다면 압록강만 넘어오면 혹은 한강만 넘으면 아래까지는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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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대는 전방과 후방이 정해져 있지 않을 정도로 장거리 공격무기들이 많이 발전해 있다. 그렇지만 결국 모든 전쟁은 지상전으로 마무리가 된다. 방어를 위한 대표적인 수단으로 읍성과 산성이 있다. 산성은 지형적인 요건이 갖추어질 때 가능하지만 지형적인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는 읍성이 대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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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읍성은 금강과 더불어 서해를 방어하는 위치에 자리한 방어 공간이다. 서천을 잘 내려다볼 수 있는 낮은 야산에 자리한 서천읍성은 현재 복원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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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이라는 지역은 백제가 패망할 때 당나라 군사들이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왜구들이 출몰해서 백성들을 괴롭혔던 지역이기도 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했던 일본은 과거 중앙에서 통제하지 못했던 오랜 시간을 보냈다. 노략질은 과거 생존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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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천읍성은 지속적인 복원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접근이 어렵지가 않다. 서천읍에 자리한 조선조 쌓은 서천읍성은 인근 한산읍성, 비인 읍성과 함께 서천을 대표하는 3대 읍성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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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지명 서천군(舒川郡)은 조선 태종 13년에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이전까지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서천읍성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읍치를 둘러싸고 출입구만 내 성 밖과 통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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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복원된 서천읍성의 성벽은 짜임새가 있지만 초기 축성 방식이 조선 전기 쌓은 다른 지역 읍성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성벽 돌출부에는 방어를 위해 치성(雉城)을 덧붙였다. 치성은 모두 16개소로 확인되었는데 외벽만 돌로 쌓고 내부는 흙과 잡석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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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해미읍성과 서천의 서천읍성은 느낌이 다르다. 해미읍성은 완전하게 성의 구조를 가지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곳은 사람의 삶이 성벽의 안쪽과 바깥쪽에 모두 있고 위기시에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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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는 방어를 위한 성이었지만 지금은 북쪽 성벽 안쪽에는 둘레 길과 함께 휴게시설과 체육시설, 각종 편의시설이 자리해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현 읍성의 보존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금강수계에 자리한 방패로서의 읍성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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