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의 소리목 미술관 & 목 카페
예술이 시작된 것은 문제의 본질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생산적인 관점에서였다. 지금의 예술을 온전하게 생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라틴어 'ars'에서 시작된 'art'는 생산 행위를 가리킨 것이었다. 오랜 시간 예술은 그렇게 새로운 방법과 흐름을 만들어가면서 사람의 삶을 변화시켜왔다. 사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실용적인 것이나 생산적인 활동의 실마리는 예술에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은 새로운 길과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천의 한 카페이기도 하면서 길 위의 예술학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은 소리목 미술관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서천에 대표적이 미술관이 없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길 위에서 예술을 만나니 반갑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톰의 인기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아톰은 미래사회의 로봇을 상징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어떨까. 계획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테슬라는 2023년에 옵티머스(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버전 1의 생산을 시도할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어떠한 일도 다 할 수 있을 것이고, '풍요의 시대'를 가져올 것이라고 하지만 어떤 사회가 올진 상상할 수가 없다.
예술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아직까지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중세의 예술가는 공예가·기술자들이며, 대부분 길드에 소속되어 단체로 활동했었다.
이곳의 정원에는 다양한 형태와 콘셉트의 작품들이 있다. 열린 공간이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지 않아도 작품을 감상할 수가 있다.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친화적인지 몰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가오기도 한다.
아래에 놓인 작품처럼 이제 우리는 두 손안에 무엇이 담길지를 고민해야 될 때가 되었다. 생각의 전환은 이제 꼭 해야 되는 고민 중에 하나가 되었다.
공간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놓여 있다. 예술에서 ‘미학(aesthetics)’이란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도 1750년에 바움가르텐에 의해서였다.
돌로 쌓아둔 담장 아래에 윤봉길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흰색의 옷을 입은 윤봉길은 누가 보아도 그 사람인 줄 알 수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작품은 이 작품이지 않을까. 기린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리가 무척 긴 사슴처럼 보이기도 한다. 흰색의 사슴이나 기린은 없겠지만 뼈대가 명확하게 보이는 작품 속에서 샘 영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장미꽃 한 송이를 든 손인지 알았는데 뱀처럼 사람의 손을 휘어 감고 있는데 머리가 장미꽃이었다. 장미꽃은 가시가 있기에 더욱더 매력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기술의 발전은 아름다운 장미꽃을 보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몸을 휘어 감는 뱀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가장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길 위의 예술학을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