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Apr 13. 2022

남쪽의 창

왜 사냐고 물으면 웃어볼까?

오래된 고택과 조금은 불편한 듯한 옛날의 환경을 보면 간혹 옛날 시가 생각날 때가 있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라는 시를 쓴 김상용의 시를 읽으면 무언가 유유자적한 느낌이 들게 해 준다. 이맘때가 되면 밭을 갈고 괭이라고 파고 호미로 김을 매기에 딱 좋다. 청양의 방기옥 가옥에 왔더니 강냉이는 없었지만 진하디 진한 대추차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왜 사냐건 묻지 않길래 웃지는 않았다. 

남(南)으로

창(窓)을 내겠소.


밭이 한참 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상용

고택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수선화는 어떤 꽃보다도 먼저 봄을 알리는 알뿌리 식물 중 하나다. 밝은 노란빛은 주위를 화사하게 만들어주며 동화작가인 타샤 튜더를 생각하게 만드는 꽃이기도 하다. 

이곳은 꽃밭이다. 하나씩 가꾸고 계속 살펴야 하는 것이 식물이다. 식물 역시 반려동물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잡초와 달리 아름다운 꽃일수록 지켜봐 주고 살펴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의 집주인을 알고는 있지만 굳이 들려보지 않았다. 호미를 들고 가는 뒷모습만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예전에는 고택에서 머물기로만 운영되던 곳이 찻집이 자리를 잡으면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상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서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래는 고택의 안방과 옆에 대청은 주인 분들이 거주하던 곳인데 거실마저도 내어주었다. 옆에는 반층을 높여둔 작은 방이 있다. 작은 방에는 한 명이나 두 명이 들어가 앉아 있으면 딱 좋을만한 곳이다.  

이곳은 건물이 마당을 감싸는 공간이 있고 탁 트인 곳도 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고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방기옥 가옥은 자연 순응형 설계를 일찍이 적용한 주거공간으로 자연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집이기도 하다. 

안쪽의 방으로 들어오면 말 그대로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그런 생각이 절로 났다. 이맘때 찾아오면 봄꽃과 함께 다양한 꽃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마당으로 나오면 장독대가 있는 곳의 뒤편으로는 경사가 있어서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고 마당에서도 머무를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두었다.  이곳 청양의 방기옥 고택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돼 ‘ㅁ’자 형태로 건축된 전통 가옥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7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담장의 끝자락에 와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을 찾은 차량들이 주차가 되어 있고 초가지붕의 찻집이 코앞에 있다. 양생이라는 단어는 삶을 기르다는 말이 되는데 여기에서는 타고난 생명을 온전하게 보존하며 삶을 충실하게 가꾸어 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단을 가꾸듯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때 좋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