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4 혈사(穴寺)중 하나인 동혈사
풍수라던가 비보에 대해서 어릴 때 여러 권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누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다시 비보풍수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만 같다. 얼마 전에 운이라는 것을 언급할 때 친구 같은 대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전망이 좋은 곳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내려다보며 앞의 일을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은 덜한 편이지만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비보풍수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방법이기도 했다. 풍수와 관련해서 적지 않은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서적도 출간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완벽한 땅은 없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풍수다. 지나친 것이나 모라란 것을 사람이 살기 좋기 위해 사찰이나 조형물, 비보림과 같이 인공적인 숲을 조성하기도 했었다.
천태산의 남동쪽 사면에 조성된 석굴사원인 동혈사는 백제의 부흥을 위해 만들어진 사찰이다. 남혈사나 서혈사 역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사찰은 사라지고 사찰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다. 백제시대에 풍수비보사탑설에 의해 도성을 수호하는 석굴사원이기에 특정지역의 혈을 막거나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곳은 전망이 참 좋은 곳이다. 전망 좋은 곳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탁 트인 곳을 바라보는 것도 있지만 변화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 있으면 변화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동혈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로 동혈사는 해발 392m의 천태산 중턱에 위치한 동혈사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동혈사에 대한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봄이 갑자기 찾아온 느낌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간차를 두고 피었어야 하는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4월에 봄에 피는 꽃이 모두 피고 진 다음에 바로 5월의 장미를 볼 수 있을 듯하다.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와 1871년 편찬된 『호서읍지(湖西邑誌)』에서 ‘동혈사(銅穴寺)’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19세기 무렵 절 이름이 변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혈사에는 현재 법당과 요사채 등이 있고, 법당 뒤에는 자연 석굴이 남아 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과 7매의 석탑재,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가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동혈사와 걸어 올라오는 길목이 한눈에 보인다. 서쪽 먼산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행자들은 뒷모습만 볼 수 있는 석불상이 동혈사를 상징한다. 멀리 조망은 하지만 많은 관여를 하지는 않는다.
높은 곳에서 조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낮은 곳에서는 여러 방향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높은 곳의 막다른 곳까지 올라오면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가 있다. 동혈사에 매달려 있는 종처럼 마음속의 경종이 울릴 때 외면하지 않고 다른 곳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