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터

최양업 신부가 걸었던 삶의 길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식물은 재배에 의해 성장하고 인간은 교육을 통해 형성된다고 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태어났지만 아직은 형성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관념에 사로잡히고 자신의 아집에 둘러싸여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루소는 더불어 사는 존재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보았다. 사람다움이란 자기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대우하고 자기가 이르고 싶은 대로 주위 사람을 이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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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천주교가 자리 잡게 될 때에는 많은 생각의 충돌이 있었다. 전통적이지만 조선 후반기에 바뀐 유교의 관점과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천주교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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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아버지는 경환(京煥)이고, 어머니는 이성례(李聖禮) 사이에서 태어난 최양업의 생가터에도 봄이 찾아와 있었다. 앞에는 밭을 일구기 위해 땅을 정리를 해두었다. 절기에 맞춰서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간혹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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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골성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이곳은 작지만 알차게 조성을 해둔 곳이기도 하다. 십자가의 길이 있는 공간에는 생가를 복원할 예정이며 생가터는 지금처럼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은 무릇 위태롭고 어려운 가운데에서 삶의 방향을 정하고 변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평소에 그 본심을 먼저 세워서 잃지 않는 사람인 것이니 바로 최양업을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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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조선인 신부였던 김대건은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1846년에 순교하였지만 최양업은 조선 입국 후 활동하다가 순교가 아닌 과로와 함께 식중독이 겹쳐 1861년 6월에 사망하게 되는데 문경을 자주 가봐서 알지만 문경새재로 들어가기 전에 세상을 떠난 공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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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최양업은 당시 양반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악의 근원으로 교회에서는 분열을 초래하고 국가로 볼 때는 인재 등용을 제한한다는 이유였었다. 최익현과 최양업은 모두 청양의 인물이다. 둘 다 조선 말기의 문제를 지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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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산책하듯이 이곳을 둘러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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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에는 특히나 순교자의 길을 걷는 순례길이 많다. 충청도 내포지역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 있어 ‘신앙의 못자리’로 평가받고 있는데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의 노력으로 복음의 씨앗이 퍼져나갔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신도가 순교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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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골 성지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생가터인 ‘새터’와 150년 전 병인박해 때 홍주(홍성) 감영과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무명 순교자들이 묻힌 ‘줄무덤’으로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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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의 생가터는 새터 성지라고도 부른다. 우측 계단을 오르면 최양업 신부의 동상과 장독대 몇 개가 옹기종기 놓여있는 생가터를 만나 볼 수 있다. 달을 안은 골짜기라는 이름의 다락골은 무언가 포근하게 느껴지지만 오래전에는 죽음이라는 것에 직면했던 사람들의 슬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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