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긴 스케줄의 자유여행이다.
좋은 숙소와 다양한 볼거리,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이게 하는 먹거리, 의외의 풍경 등이 주어지는 값비싼 여행을 결제했다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경험을 위해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쉽고 언제 그런 여행을 다시 해볼까란 탄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은 과연 거기에 머무는 것뿐일까.
코로나19의 큰 파도가 지나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돌아오고 있다. 얼마 전 방송에서 언차티드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영화를 소개하고 원픽해주는 촬영을 마쳤다. 그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과 지인이 말 그대로 남미의 휴양지 같은 곳에 도착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순간적으로 그곳에 있는 것을 상상했다.
우리는 일상을 영위하면서 살아가다가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쓰고 돈을 지불해서 떠나는 여행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매일매일이 특별해질 수 있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여행을 온 존재일지도 모른다. 대신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할 수 있으며 그 비용은 노력하는 방식에 따라 주어진다. 특별하게 보내는 것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도 모두 당신의 선택이다.
이곳은 논산에 자리한 선샤인 스튜디오다. 드라마로 시작하여 하루를 보내볼 수 있는 여행의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하루는 어떤 방식으로든 만나게 된다. 오늘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일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냥 익숙한 방식으로 하루의 시간을 보내버리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사람의 몸은 아낄수록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강도 이상으로 꾸준하게 운동을 해주어야 잘 유지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든 간에 사람은 어디론가 이동을 해서 무언가를 한다. 하루를 알리는 해가 뜨면 모닝커피와 스콘을 하나 들고 밖으로 나와 풍경을 만나본다.
살고 있는 공간이든 여행을 가서 묵을 수 있는 숙소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드라마를 상상해도 좋고 그냥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해도 좋다. 여행을 가면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자고 일어난 침구를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레트로풍의 찻잔에 담긴 콜롬비아산 커피를 마시면서 거실 공간의 안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에 아침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 가볍게 책을 읽어봐도 좋은 시간이다.
테라스에 나와서 밖을 보니 날은 좀 흐리지만 비가 그쳐서 더 이상 내릴 것 같지는 않다. 녹색의 푸르름이 좋은 때다. 아침에는 선선하고 오후에도 따뜻하기는 하지만 더운 정도는 아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잠깐 생각해본다.
우리는 보통은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간의 경계선에서 살아간다. 일상적으로 걸어간 길이나 지나간 도로만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로는 다른 것을 보는 것도 삶의 변화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성벽길을 걸어볼 생각이다.
만약 오른편의 담장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라면 감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신체의 자유는 있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지만 대부분 갇힌 공간에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고증을 거쳐서 만들어진 선샤인 스튜디오 안의 집들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옹벽 위에 지어진 집부터 아래에 낮게 자리한 집과 일본식으로 지어진 가옥까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이곳에는 지금 에곤 쉴레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인 에곤 쉴레는 초창기에 실레는 클림트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클림트에서 벗어나 독특한 구도로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에곤 쉴레는 화가로서 이른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사망자수가 6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의도하지 않았던 이별을 맞았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에곤 쉴레 역시 짧은 성공을 뒤로하고 1918년 10월 임신 6개월이던 아내가 유럽에서만 2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었고, 그로부터 3일 후 실레 역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람의 인생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전차에 몸을 실어본다. 얼마나 길지 모르는 인생의 여행은 매일매일 시작될 뿐이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가는 시간이지만 길지 않아서 다닐만하다. 잠시의 체험으로는 괜찮은 편이다.
긴 하루 같지만 항상 저녁이라는 시간은 금방 다가온다. 아침에 아치형 다리를 건너서 저녁에 아치형 다리의 밑으로 지나가면서 시간을 보낼 곳을 생각해본다.
미스터 선샤인에서 세 남자의 케미가 있었던 촬영장소다. ‘목이 긴 조막병’을 뜻하는 일본말인 도쿠리에 담긴 사케와 어울리는 안주는 무엇일까. 도쿠리에 들어가는 술은 얼마 안 되지만 잔도 크지 않아서 따라 마시는 즐거움이 있다. 도쿠리는 턱 밑까지 올라와 목을 감싸는 스웨터를 이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루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다. 여행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매우 소중하다면 매 순간마다 새롭게 만들면 된다. 자신을 사랑할수록 시간은 더 가치가 있어진다. 긴 스케줄의 여행에서 어느 지점까지 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보내면 후회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