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속 계곡물

하동의 서산대사가 머물던 곳

삶에 어떤 만족이 있어야 행복할까. 어느 기준까지는 필요하지만 가진 것으로 만족을 가질 수는 없다. 사람의 마음은 흘러가는 물처럼 끝없이 채워졌다가 다시 비워지는 과정을 거쳐 오늘의 나에게 이르게 된다. 그걸 모른다면 흘러간 물에 목말라 끝없이 모를 것을 갈구하게 된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흘러가는 물과 고여있는 물을 많이 보게 된다. 고여 있는 물도 처음에는 깨끗하고 맑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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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하동을 많이 찾아왔는데 서산대사가 수행했다는 곳까지는 가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서 서산대사 수행처까지 가보았다. 이곳은 고운 최치원 선생이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기 전 흘러가는 냇물에서 귀를 씻고 지팡이를 꽂아 놓고 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학을 타고 속세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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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맑다. 어디선가에서 조금씩 모여서 흘러내리는 물이 화개천을 이루어 내려온다. 이곳에는 고택이 어울린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아직 못 찾았지만 깊은 산속 계곡물은 찾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언급했다는 호리병 속 별천지 화개동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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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보는 녹음이지만 매년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전체적으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항상 다르다. 그 다른 것을 모른다면 그 어떤 것도 좋을 것이 없다. 하늘이 흐렸다가 맑았다가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게 변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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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상류에 가면 돌이 크지만 물이 가득 차는 하류로 가면 돌이 작다. 하나는 커지고 하나는 작아진다. 화개동의 상류에 자리한 이곳에 돌들은 큼지막한 것이 앉아있기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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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정(休靜, 1520~1604)은 평남 안주 출신이다.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는데 그 산이 서산(西山)이었기에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부르게 된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던 서산대사는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85세에 입적했는데 그의 영정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八十年前渠是我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80년 후에는 내가 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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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고 온갖 세상일이 번다하게 얽히고설키고 있어도 물은 흘러간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 이르면 누구도 그것을 무엇이라 할 수 없으므로 억지로 말하여 마음이라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배워서 알고 생각해서 얻는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서산대사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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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는 반달곰이 살고 있어서 곰을 콘셉트로 만든 마을이 있다. 출렁다리도 있고 평소에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체험도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한다. 걸어서 내려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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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올라왔다고 이곳의 돌들은 더 크다. 하나는 크지만 물길이 빠르게 흘러가고 하나는 작아지며 물은 느리게 채워진다. 입으로 외우는 것을 송불(誦佛)이라 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염불(念佛)이라 한다. 마음으로만 생각하면 말 그대로 염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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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낡았지만 아직 건너가는데 무리는 없는 작은 출렁다리다. 지리산 덕평봉의 남쪽 아래에 자리한 원통암은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곳에서 서산대사가 출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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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내려왔으니 그 물을 담은 차를 하나 구매해본다. 흘러가는 물은 그냥 가게 놔두고 다시 오는 물을 기다리는 것이 풍족한 인생이다. 물을 끝없이 가두어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사람 역시 흘러가는 물처럼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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