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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 있나요.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의 정신세계는 분명히 보이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것이며 열려 있는 것 같은데 닫혀 있을 때가 있다. 바로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아서 영원히 할 수 없기도 하다. 사람이 가진 정신세계는 그렇게 열려 있기도 닫혀 있기도 하다. 논산에 자리한 돈암서원을 찾아갔다가 우연하게 열려 있지만 닫힌 세상을 느끼게 된 조형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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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시각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생각이 보는 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수많은 경험과 선입견이 가릴 때가 있다. 저 문을 연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당신은 믿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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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의 대표적인 서원인 돈암서원에는 유채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화사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노란색의 물결이 환한 연두색을 밑에 두고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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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논산 돈암서원에 원래 있었던 책판 54점이 7일 소장자의 기증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가례집람은 조선 중기 학자인 김장생이 주자의 ‘가례’를 증보, 해석한 책으로 1685년(숙종 11년) 송시열 등 여러 제자의 노력으로 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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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대전 소재의 대학에서 온 학생들이 돈암서원과 연산 문화창고를 이어주는 다시 봄을 만나기 위해 소풍을 나와 있었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끝나고 나서 마스크는 쓰고 있지만 조금은 자유롭게 문화재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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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배움의 공간이었던 돈암서원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기간이다. 연산 문화창고뿐만이 아니라 이곳 돈암서원에 자리한 건물마다 현대적인 작품의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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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찾은 학생들은 같이 온 교수들과 함께 이곳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세상은 극단으로 단절되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월든을 쓴 데이비드 소로는 마치 숲 속에서 고립되어 살아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고립되어 살지 않았다. 엄마의 요리를 먹으려고 나왔으며, 우체국과 카페에 들르려고 걸어서 마을로 나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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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에 있는 건물들에 현대 예술작품이 이렇게 걸린 적이 있었던가. 건물 곳곳에 연산 문화창고 기획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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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의 건물 안쪽으로 들어와서 뒤에서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소로가 사회와의 끈을 전부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는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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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찾은 덕분에 돈암서원에 생기가 넘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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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이 보관되었던 건물로 들어서니 텅텅 빈 공간에 작품들이 걸려 있다. 고서 ‘돈암서원지’ 등에 따르면, 돈암서원에선 한때 4168개의 책판을 보관 중이었으나 많은 양이 유실돼 현재는 1841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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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할 때 책장이 있는지를 본다. 책장이 있다면 그곳에 꽂혀 있는 책들이 어떤 종류인지 살펴본다.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돈암서원의 서고는 비어 있었지만 충남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 4일부터 ‘2022 기증・기탁 유물 정기 특별전’을 열고 이기하 묘지석을 비롯해 작년 한 해 동안 기증・기탁받은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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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볼링공들이 파란색으로 칠해진 채 마당에 놓여 있다. 조금은 낯선 풍경이다. 원색으로 칠해진 볼링공 수십 개가 담긴 작품이 이곳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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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의 정의재라는 건물에는 수수한 색채를 가진 작품들이 놓여 있다. 정의재는 자세한 의의라는 뜻으로 학문을 하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자세히 강론하던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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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의미를 찾아야 될 때가 있고 그 의미를 그대로 가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돈암서원의 시간은 지나간 것이다. 현재는 지나가고 있지만 때론 돈암서원과 같은 곳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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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의 입구에 자리한 멋들어진 배롱나무가 잎을 싹 틔우고 있었다. 이제 5월이 되었으니 6월이 되면 조금씩 백일홍을 피울 것이다. 삶을 성찰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려면 자신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열려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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