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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8. 2022

열려 있나요.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의 정신세계는 분명히 보이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것이며 열려 있는 것 같은데 닫혀 있을 때가 있다. 바로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아서 영원히 할 수 없기도 하다. 사람이 가진 정신세계는 그렇게 열려 있기도 닫혀 있기도 하다. 논산에 자리한 돈암서원을 찾아갔다가 우연하게 열려 있지만 닫힌 세상을 느끼게 된 조형물을 보았다. 

우리가 보는 시각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생각이 보는 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왔던 수많은 경험과 선입견이 가릴 때가 있다. 저 문을 연다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당신은 믿겠는가. 

논산의 대표적인 서원인 돈암서원에는 유채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화사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노란색의 물결이 환한 연두색을 밑에 두고 펼쳐져 있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논산 돈암서원에 원래 있었던 책판 54점이 7일 소장자의 기증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가례집람은 조선 중기 학자인 김장생이 주자의 ‘가례’를 증보, 해석한 책으로 1685년(숙종 11년) 송시열 등 여러 제자의 노력으로 간행된 것이다. 

이날은 대전 소재의 대학에서 온 학생들이 돈암서원과 연산 문화창고를 이어주는 다시 봄을 만나기 위해 소풍을 나와 있었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끝나고 나서 마스크는 쓰고 있지만 조금은 자유롭게 문화재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오랜 배움의 공간이었던 돈암서원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기간이다. 연산 문화창고뿐만이 아니라 이곳 돈암서원에 자리한 건물마다 현대적인 작품의 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학생들은 같이 온 교수들과 함께 이곳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세상은 극단으로 단절되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월든을 쓴 데이비드 소로는 마치 숲 속에서 고립되어 살아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고립되어 살지 않았다. 엄마의 요리를 먹으려고 나왔으며, 우체국과 카페에 들르려고 걸어서 마을로 나가기도 했다. 

돈암서원에 있는 건물들에 현대 예술작품이 이렇게 걸린 적이 있었던가. 건물 곳곳에 연산 문화창고 기획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작품들이 놓여 있다. 

돈암서원의 건물 안쪽으로 들어와서 뒤에서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소로가 사회와의 끈을 전부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과거와 현재는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이곳을 찾은 덕분에 돈암서원에 생기가 넘치는 것만 같다. 

서책이 보관되었던 건물로 들어서니 텅텅 빈 공간에 작품들이 걸려 있다. 고서 ‘돈암서원지’ 등에 따르면, 돈암서원에선 한때 4168개의 책판을 보관 중이었으나 많은 양이 유실돼 현재는 1841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필자는 다른 사람의 집에 방문할 때 책장이 있는지를 본다. 책장이 있다면 그곳에 꽂혀 있는 책들이 어떤 종류인지 살펴본다.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돈암서원의 서고는 비어 있었지만 충남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 4일부터 ‘2022 기증・기탁 유물 정기 특별전’을 열고 이기하 묘지석을 비롯해 작년 한 해 동안 기증・기탁받은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볼링공들이 파란색으로 칠해진 채 마당에 놓여 있다. 조금은 낯선 풍경이다. 원색으로 칠해진 볼링공 수십 개가 담긴 작품이 이곳에 놓여 있다. 

돈암서원의 정의재라는 건물에는 수수한 색채를 가진 작품들이 놓여 있다. 정의재는 자세한 의의라는 뜻으로 학문을 하는 유생들이 모여 경전의 의의를 자세히 강론하던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때로는 의미를 찾아야 될 때가 있고 그 의미를 그대로 가로 읽어야 할 때가 있다. 돈암서원의 시간은 지나간 것이다. 현재는 지나가고 있지만 때론 돈암서원과 같은 곳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때가 있다. 

돈암서원의 입구에 자리한 멋들어진 배롱나무가 잎을 싹 틔우고 있었다. 이제 5월이 되었으니 6월이 되면 조금씩 백일홍을 피울 것이다. 삶을 성찰하려면 거리를 둬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명확하게 들여다보려면 자신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열려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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