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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7. 2022

마음의 나침판

강진향교, 현대인의 미래를 논해보다.

잘 익은 대봉감 홍시가 그렇게 달달할 수가 없었다. 홍시는 잘 익은 단감과 달리 물러지고 색깔은 진하디 진한 검붉은색에 가까워지기에 처음 보았을 때는 그 맛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무르익어가는 것처럼 마음의 아름다움은 늘 곁에 있는 친구와 같다. 아름다움에 대한 고찰에는 시각과 청각이 빠질 수가 없다. 사각거릴 것 같은 은행나무의 노오란 단풍잎의 색감이 좋은 날 공자는 제자들에게 많은 말을 남겼다.

공자에서 나오는 행단의 은행나무가 있는 곳이다. 은행나무의 밑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서경을 기술하고 예기를 가르치며 역경을 찬술 하였다. 은행나무의 잎이 초록색으로 짙을 때부터 이렇게 노란색으로 물들었을 때 산다는 건 천천히 태어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다른 의미로 전달했던 공자의 말이 새겨진 강진향교 앞에 섰다.

1398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한 강진향교는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내삼문·외삼문·재실 등이 있으며,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과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13년에는 이 지역 출신 입방자(入榜者)들이 의금(義金)을 내고 군수 정인(鄭寅)의 도움을 받아 사마재(司馬齋)를 건립한 특이한 역사가 있다.

향교의 안으로 들어와서 보니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의 글처럼 펼쳐졌다. 영국 속담에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 어떤 것을 볼 수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천차만별이라는 이야기다. 어떤 글을 읽고 싶겠는가. 황금색의 단풍잎이 수북하게 쌓인 곳에서 공자는 평생을 마음의 나침판에 대한 이야기를 말했다.

하나의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은행나무는 마치 현대의 화석과도 같다. 가장 오래된 나무이며 그 형질이 그대로 유지되어 온 나무이기도 하다. 1,500년 동안 살아남은 은행나무도 있다. 은행나무는 고목이 되면 자신의 흔적을 그 앞에 남기며 사라진다.

죄를 의미하는 라틴어 'perccatum'이나 히브리어 'hattath'는 모두 목표를 놓치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공자는 자신이 목표한 바대로 살았는지 모르지만 춘추전국시대에 명예도 부를 원하지도 않았으며 머무르지도 않았다. 계절의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한대(漢代)의 대유학자였던 동중서는 춘추(春秋)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찾아내고자 했다. 그래서 지극한 말로 부모님의 춘추가 어떻게 되시냐고 묻는 것이기도 하다. 공자는 부모님의 연세를 알지 않으면 안 되니 한 편으로는 기쁘고 한 편으로는 두렵다고 했다.

어떤 가르침이 좋은 것인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보면 계사년 6월 12일 을미에 아침에 흰 머리카락을 재빨리 뽑았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염색약도 없었으니 늙지 않아 보이려면 뽑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래서 문명이 좋은 듯하다. 이순신은 자신이 늙었음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어머니가 더 연로했다는 것을 잊고자 했다.

강진향교의 5성(五聖), 송조 4현(宋朝四賢)과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해둔 대성전은 지금 한참 보수공사 중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짙은 가을향기를 품은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너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마음의 아름다움을 찾기가 어렵다. 삶의 균열을 메우고 사랑의 빛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렇게 속도를 늦추고 멈추어 서야 한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할 수 있게 말이다.

마음의 나침판을 안다는 건, 분석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보이는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말하는 것을 모두 담을 수는 없겠지만 공자는 평생 자신이 말한 것들이 제자들이 담아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의 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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