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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01. 2022

칼의 노래

이제 검찰은 그 칼을 놓아야 할 때다. 

일개 공무원의 말이 언론에 공개적으로 나올 수가 있을까. 쉽지 않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지자체 단체장, 국장, 과장, 서기관등을 만났지만 그들의 속 타는 말이 언론에 나오는 것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나오더라도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검찰의 수사권 문제로 인해서 나오는 검찰공무원(지검장이든 고검장이 든 간에 공무원에 불과하다)의 발언은 어찌나 잘 실어주는지 역시 힘은 있긴 한가보다. 사시를 통해 들어왔던 로스쿨에서 조금 높은 점수로 들어갔든 간에 어쨌든 간에 공무원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 자신의 책무를 모르는지 모르겠다. 


수사의 경험을 말하는데 모든 것을 털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필자도 누구라도 그렇게 수사할 자신이 있다. 결국 사람의 자질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사람이란 살아있는 이상 본래 힘을 지향하는 것이다. 스님이 되어서도 권력에 자유롭지 못하고 천주교 사제도 추기경이 되기를 꿈꾼다. 그걸 스스로 자제할 수 없기에 누군가 제어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사적으로 혹은 자신의 과욕으로 무언가를 지향할지라도 공적인 것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 그것 중에 하나가 바로 수사, 기소, 판결이다. 잣대가 휘어져서도 안되고 늘어져도 안되며 항상 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지만 과연 그러했는가. 판관 포청천이나 어사 박문수 같은 자질을 가질 수가 없다면 아니 그걸 이용해 아주 약간의 돈이라도 불릴 생각이 있다면 그 분야에 있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처음부터 변호사로 시작을 해야 함이 마땅하다. 


한국은 사법에 대한 신뢰가 전 세계 OECD 순위 중에 거의 꼴찌다. 한국은 참 묘한 나라다. 물론 필자도 한국인이지만 선진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실제 행동은 후진적일 때가 많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지만 너무 많이 굽는 경우도 많다. 


검찰은 대한민국의 각종 범죄 수사 중 극히 일부를 할 뿐이다. 게다가 선택적인 수사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것이나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돈이 되는 것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이나 현대, 롯데 같은 곳을 수사해서 이름을 알리고 적당한 때에 검찰에서 탈출해서 변호사로 변호하며 결국 가볍게 만들어서 큰돈을 번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돈벌이인가. 이름을 알리는데 검찰을 활용하고 돈을 버는데 전관예우를 활용한다. 


문제는 그들이 가진 수사라는 카드를 누가 가져가느냐다. 우선은 경찰이 많이 가져가겠지만 제어할 조직이 필요하다. 어설프게 시작한 공수처가 그 대안은 아닐 것이다. 한국형 FBI가 생기겠지만 결국 검찰의 인력 상당수가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걸 어떻게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에게 물어본다면 대안을 줄 수 있지만 정치인이 아니기에 물어볼 가능성은 없다. 


칼의 노래는 이제 들리지 않아야 할 때가 왔다. 그러하기에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권력은 때론 잔인한 짐승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혹은 이익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기에 세상이 왜곡되고 그 틈새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검찰은 자신의 과오를 충분히 반성하고 칼을 내려놓고 어떤 것을 지향하며 살지 생각해야 할 때다. 세상은 그들이 생각했던 장기판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 돈은 다른 곳에서 벌어야 하며 마치 국민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 척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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