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May 06. 2022

노동의 종말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건전한 노동의 관점

돈이란 어떤 것인가. 필요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를 구분하는 잣대는 아니다. 그런데 마치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는 잣대처럼 쓰이고 있다. 최근에 인사청문회에서 보듯이 돈의 보는 관점은 너무나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직이라는 것은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고위공직자라는 것은 일반 사기업에서의 관점과 다르다. 대기업 CEO가 연봉으로 얼마를 받든 간에 공직자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중산층 기준에 머물러야 한다. 대한민국 평균의 눈높이를 알 수가 없는데 과연 보편적인 정책을 내놓고 추진할 수 있을까. 누가 보아도 자신의 기준에 맞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라는 괴물을 활용해서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주식회사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더 큰 자본으로 더 큰 사업과 산업을 키울 수 있었다. 그렇게 돈은 더 큰 탐욕을 먹고 자라나다가 실물경제를 넘어서 금융경제가 중심이 되어버렸다. 각종 파생상품과 암호화폐와 같은 사실 실물경제와 아무런 상관없이 도박 상품이 등장하였다. 


중국의 가장 돈이 많다는 대부호가 돈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한 사람이 물었다고 한다. 돈을 어떻게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그 대부호는 우선 작은돈부터 모아야 한다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작은돈이 얼마인지 묻는 질문에 그는 1억위안이라고 말한다. 1억위안은 현재 한국환율로 190억이다. 


노동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실물경제로 전혀 들어가지 않는 돈을 벌기 시작하면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일한 것도 없는데 순간의 선택으로 많은 돈을 번 사람이 과연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찾아온 돈이라는 행운은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부터 돈은 신기루가 되기 시작한다. 얼마가 있든 간에 만족하지 못하고 수중에 돈 한 푼이 없더라도 암호화폐시장이나 주식시장을 기웃거린다. 


돈은 사람의 가치를 완성시켜주지 못한다. 그리고 실물경제는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노동하는 사람이 없고 순간의 행운이나 손가락으로 몇 번 터치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돈 앞에서는 누구도 전문가가 없다. 마인드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문가에 가까워질 뿐이다. 


요즘 세상은 도덕성을 찾기가 어렵다. 지금도 적지 않게 날아오는 투자 유도 스팸문자를 비롯하여 카톡을 본다. 잠시 들어가서 어떻게 보고 있으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열심히 주면서 돈을 벌은 사례를 알려준다. 한 1주일 정도 보고만 있고 반응하지 않으면 어느새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다. 끝까지 어떻게 하나 보고 있으려고 했는데 아쉽기만 하다. 


위에서부터가 생각이 잘못되었는데 우리 사회가 맑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이 일하기 위해 직업을 구하고 어떤 분야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그냥 기능일 뿐이다. 그것 자체로 그 사람이 대단해질 수도 없고 고귀하지도 않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돈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정류장이 있다면 정류장에서 다음 정류장으로 가기까지 필요한 것이 돈이다. 최종 목적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정류장을 10개씩 뛰어넘어서 갈 수도 없다. 


정류장에서 목적지는 모든 사람이 다를 수 있다. 다른 사람이 가려는 비싼 값을 치른 승차권이 필요한 정류장이 좋아 보여도 자신이 가야 할 정류장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자신이 타야 할 버스를 타지 않고 무리해서 다른 사람이 타는 버스를 타는 일은 거의 없다. 돈이란 자신이 가야 할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를 탈 그 정도가 있으면 된다. 그리고 허기를 달래줄 간식과 음료 정도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 있으면 된다. 


사회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돈이 불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가 불행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노동이 종말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건전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칼의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