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논어의 첫 구절에서 등장하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작금의 교육 현실은 공자가 생각했던 세상보다 훨씬 못한 느낌이 든다. 배우는 것도 직업을 얻는 것도 자유로 표방하지만 정말 자유인가 되묻고 싶다. 태어난 가정과 부모에 따라 직업이 결정되고 할 수 있는 역량까지 규정되는데 뭐가 자유란 말인가. 말하기는 쉽지만 자유롭지 못한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옥산이라는 휴게소와 IC를 기억하게 된다. 옥산휴게소를 보면 집에 거의 다 왔구나라는 느낌을 받는다. 우연하게 청주에 속한 옥산면이라는 지역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들려보았다. 옥산에는 응봉산이 있다. 청주 서쪽에 송골매가 날개를 피고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이 응봉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에는 덕신 학교가 자리한 곳인데 하동정씨가 이곳에 세거 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이 안동의 하회마을과 같아서 예로부터 학문을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덕촌에는 학문을 소중히 여긴 서촌 마을, 하루 세 번 반성하여 군자답게 살라는 삼성골이 있다고 한다.
공자 이전에 흔히 말하는 고귀한 귀족이라는 의미의 군자는 특정 가문에서만 나왔다고 한다. 지방 세력가의 집안에서 태어나면 그냥 군자가 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해도 하는 짓이 개차반이어도 별 노력을 안 해도 군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재벌과 정치인들을 보는 것만 같다.
공자는 스승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공자가 말한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과 함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노력해서 만족하게 되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스스로 노력해서 만족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별 노력도 없이 외모나 재력 등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생색내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고귀한 사람은 없다.
이곳에는 옥산초등학교의 전신이었던 덕신 학교가 있어서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의 뜻을 받들어 전통문화 체험학교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에 덕신 학교는 110년 만에 복원되었는데 출범 초기 덕신 학교는 한문 위주의 서당 체제를 버리고 역사, 지리, 농업 등 근대 교과를 교육하였다고 한다.
정순만은 상동청년회에서 을사조약 반대 투장을 주도하다가 투쟁을 위해서는 국민의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결의하고 이곳에 근대학교 설립을 추진하였다고 한다.
독립운동가였던 정순만의 영향으로 3.1 운동 때 덕촌마을 주민들도 일심 단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이를 되새기는 3.1절 기념행사가 197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정수충 영정 및 영정중모기가 남아 있다. 정수총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제의 아들이며 자는 경부, 시호는 문절, 본관은 하동이라고 한다. 세종 32년에 급제하여 관직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공자는 당시 귀족들만이 특권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깬 사람이기도 하다. 배워서 익히고 스스로를 군자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다고 가르쳤으며 스스로를 계속 깨어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었다. 자격이 딱히 있지도 않는데 능력 있다고 떠들고 많은 것을 가지려는 기득권들은 더 깊게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