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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28. 2022

스트리트 킹

공권력은 고여있으면 반드시 썩는다. 

공권력을 썩게 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 방법은 견제, 두 번째 방법도 견제, 세 번째 방법도 견제뿐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이 전부인 줄 아는 오만하고 절제되지 않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았다면 사회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공권력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견제 없이 절대 자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즉 틀리지 않고 잘못되지 않았다는 가정을 세워놓은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의?라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만 보아도 과거에 일어난 범죄가 상품화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곳에 등장하는 연예인과 형사들, 프로파일러들은 피해자에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고 가해자에 분노하는 것 같지만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차라리 영화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영화 스트리트 킹은 썩어가는데도 썩아가는지 모르는 경찰 조직의 비리를 다룬 영화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머무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그곳에 있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자극적인 환경에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이 전부인 줄 안다. 영화 속에서 톰 러들로는 LA경찰국의 베테랑 형사로, 오랜 세월 거리의 범죄자들과 씨름해온 탓에 어느덧 정의감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건을 해결하면서 스스로가 바뀌게 된다.  

그 역시 법과 절차를 따르지 않는 사람으로 바뀌어간 것이다. 단지 다를 것이 있다면 그가 속한 조직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썩었다는 것이 영화 관객으로서는 안도감이랄까. 정의와 공정이 더 모호해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현재 한국의 양대 정당은 무능과 탐욕을 대표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이좋게 주고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무능한 것이 더 나쁜지 탐욕스러운 것이 더 나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듯하다. 적어도 자신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국민을 들먹이는 것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지만 매번 그런 짓을 할 것이다. 적어도 영화 속 톰 러들러는 법과 절차는 지키지 않았어도 남에게 가해한 범죄자는 잡았다. 그게 나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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