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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17. 2022

차. 사람 향기

강진의 백운옥판차와 이한영 생가 풍경

차의 향기도 있지만 사람에도 향기가 있다. 차 같은 향기를 가진 사람은 은은하고 따뜻하며 지혜롭다. 차를 만들기 위해 끓여내는 에너지가 차속에 담겨 있는 향기를 끌어낸다. 삶을 담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어디에든 적용이 된다. 사람이 살기 위해 활동하는 생산적인 것들은 돈을 만들어내고 비생산적이지만 경험하기 위한 것들은 돈이 쓰인다. 돈이라는 것은 그런 때 유용해지는 것이다. 

지금이야 강진, 하동, 보성 등의 녹차 산지에서는 상품명이 있지만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지역의 차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 상표는 강진의 백운 옥판 차다. 이한영 생가의 바로 옆에는 다향산방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차를 마실 수도 있고 구매할 수도 있다. 

자신의 삶 속에 에너지 창고는 끊임없이 비워지고 채워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바닥이 난지도 모르고 질주하면 버닝 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삶의 에너지는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다양한 방법으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어본다. 지금까지 자동차는 한 번도 중고차를 사본 적이 없었다. 새 차를 바꾸면서 느낀 것은 차를 사면서 드는 만족감은 첫 번째가 가장 컸다. 그 이후로는 더 가격대가 있으면서 편한 차를 샀지만 효용성은 점점 떨어져 갔다. 심지어 지금 차는 아무리 자기 최면을 걸어도 2~3달 정도 갔을까. 군대에서 자동차 정비를 해본 덕분에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마음으로 첫 번째 소형차는 참 많이 아꼈다. 그 차에 비하면 훨씬 고급스러운 지금 차는... 필자의 손으로 하지도 않는 돈 들인 세차도 잘 안 한다. 그만큼 필자에게 효용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작고 이쁜 꽃들이 오히려 발길을 끈다. 큰 것(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들)을 사면 확실히 초반에 에너지 게이지가 확 차는 것을 느끼지만 그 시간이 길게 가지 않는다. 에너지 창고가 크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의 에너지 창고는 한계가 있다. 즉 채우고 넘치는 에너지는 허공으로 사라진다는 의미다. 행복이나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작게 쪼개서 자주 느끼는 것이 가장 좋다. 3,000만 원짜리 차를 사서 만족하는 것보다 3만 원씩 1,000번을 만족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지혜로운 일이다. 

사설이 좀 길었다. 행복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의 가치를 나누는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좋은 감정을 누군가에게 전이시키는 것만큼 좋은 것도 많지 않다. 

다향산방의 안으로 들어와 보았다. 차의 앞면에는 백운 동판 차의 상표인과 뒷면에는 한반도를 꽃문양 속에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백운동 한 자락 나뭇가지에 피어난 강남의 봄소식이라는 뜻도 있다. 

강남이라고 하면 서울 강남을 생각하겠지만 전남 강진이라는 곳의 옛 지명이 강남이었다. 아기자기한 차와 관련된 물건들도 구입할 수 있다. 자 30,000원을 들여서 어떤 만족을 해볼까. 

좋은 차를 사서 그녀들과 마시기 위해서는 경험의 가치가 어떠한지 먼저 전달해줄 필요가 있다. 사람은 스토리가 있는 맛과 음식 혹은 차를 마실 때 더 배가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1,830년 강진의 막내 제자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차를 보내달라고 청하는 내용 중에 삼증삼쇄 떡차 제다법을 자세히 설명하였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말 귀찮게 작업을 해서 차를 만든다음에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자신이 그만큼 가르쳐놨으니 보답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은근한 압박이라고 볼 수 있다. 

한참 전에 왔을 때는 허름한 집만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가 보니 번듯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백운동판차에서 백운동은 계곡물이 하얀 구름이 되어 올라가는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생가가 남겨져 있는 이한영은 이시헌의 후손으로 일본이 월출산 자락의 품질 좋은 차를 대량으로 수탈해가던 1920년대에 국내 최초의 차 브랜드인 백운판옥차를 판매하며 민족정기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한영과 별다른 인연이 없으니 그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이곳까지 와서 차를 사던지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방법뿐이 없다. 그래도 이곳까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놔야 같이 차를 마시는 사람도 아~ 그렇구나 하지 않겠는가. 이시헌의 후손들은 귀찮게 했던 정약용의 후손들과 인연을 끊지 않았을까. 

이곳은 머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한영전통차문화원은 다부 이한영 선생의 생가를 관리하며, 다신계의 약속을 100년 이상 지킨 ‘금릉월산차’와 일제강점기 우리 차의 정체성을 지킨 ‘백운옥판차’를 전승하고 있다. 

차를 마시기에 좋은 분위기의 공간이다. ‘다선(茶仙)’으로 추앙받았던 이한영 선생은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 차(茶) 역사의 맥을 이어온 다인(茶人)으로 알려져 있다.

‘백운옥판차’는 곡우에서 입하 기간 중 오전 찻잎을 따 푸른빛이 사그라질 때까지 덖은 후 손으로 비벼(시루에 쪄서 비비기도 함) 온돌에 한지를 깔고 한 시간 가량 말려 옹기에 저장하는 제다기법(製茶技法)을 사용했는데 강진의 이런 분위기가 묻어 있는 차다. 


행복한 느낌은 작아도 자주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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