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등기산 경관, 마음을 훔치다.
나이가 추정되는 이런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비유를 하기 위해 꺼내본다. 오래전 방송사의 모 프로그램에서 '그래 결심했어'하면서 두 가지의 선택지 중 선택한 것에 따라 변하는 인생을 가볍고 재미있게 연출했던 방송이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하게 중국집에서 짜장과 짬뽕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에 따라 아주 조금은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행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선택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1인 여행이 아닌 함께하는 여행이라고 해도 개인성이 부여가 된다. 독일어의 신조어 중 개인성에 해당하는 것은 '각자 나임'이라고 있다. 나의 개인성이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자신이 항상 그 현장에 있다는 점이다. 나는 나, 당신은 당신이다. 그리고 같은 공간이라도 다르게 경험한 것은 공유가 쉽지가 않다.
이곳은 울진의 등기산이라는 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카이워크가 있는 곳이다. 강은 흘러가고 바다는 그곳에 있다. 사람들은 강에서 찾는 것과 바다에서 찾는 것은 다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더운 여름 어느 날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등기산 스카이워크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울진과 울산은 묘하게 겹쳐지는 이미지가 있다. 도시규모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바다의 풍광에서만 보면 둘이 자매 같아 보이기도 한다. 선택적 여행길에 후포리가 있었는데 해발 64미터의 나지막한 등기산에는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스카이워크가 있었다.
어제 고생한 마음, 계단만 보아도 놀란다는 말이 있던가. 후하고 넉넉한 바다라는 의미의 후포(厚浦)리에 오면 먹을 것이 그냥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물고기를 잡는 큰 그물을 뜻하는 ‘후리’에서 유래된 마을에는 맛있어 보이는 해산물이 집집마다 그득하다. 지불할 능력만 있으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
계단을 올라와서 보니 후포리에 펼쳐지는 풍경이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고 있다. 필자의 등 뒤로 일출 명소로도 이름 높은 등기산 정상에는 무인등대가 서있는데 등기산 자체가 주변을 지나는 선박을 위해 낮에는 흰 깃발을 꽂고 밤에는 봉화불을 피웠기에 유래된 이름이기도 하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가는 여객선을 탄 기억이 있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렇지만 후포여객선터미널에서는 울릉도까지 가장 단시간에 갈 수 있는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여행지 어디를 가더라도 하트 형태의 조형물이나 이처럼 벤치가 하트로 표현된 것들이 적지가 않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물가가 올라가고 AI가 일자리를 위협해도 대한민국에는 사랑이 넘치고 있는 듯하다.
등기산 공원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출렁다리가 무서운 사람들은 해변 쪽의 나무계단을 이용해도 된다고 하는데 원래 거기부터 올라가는지 알고 올라갔을 뿐이다. 바다로 나아가 있는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2018년 2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바다로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오랜 시간을 나아가 있는 암석은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자연의 절경이기도 하다. 직접 가보았는데 바위가 세찬 파도와 세월에 얼마나 깎였는지 날카롭기만 하다.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 바다처럼 너그러워지길 바라면서 푸른 바다를 감싸고 받아들인 세월의 흔적이기도 하다.
때론 풍경에 진심이 될 때가 있다. 여행에도 빌려준 지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여름휴가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SNS와 다양한 채널을 살펴본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 본 것이 울진의 풍경들을 다룬다면, 그것은 오로지 사람들이 이미 울진에 대해 생각했고 그 사실이 담겨있는 정보들을 살펴보게 된다. 사실 이런 사진들은 울진을 기억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기억해줄 분이다.
걸어서 안쪽으로 오니 스카이워크 아래의 투명창을 통해 짙푸른 동해바다가 보인다. 이곳에는 신석기 문화가 남겨져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모두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지만 유적과 유물 모형은 후포리 신석기 유적관에서 볼 수 있다. 1983년에 후포리에서는 신석기인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이제 아까 본 갓바위로 걸어서 나가본다.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를 먼저 보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부처가 먼저 연상된다. 바다 위로 나아간 스카이워크가 있기 전까지 후포리에서는 갓바위가 지역 명소였다. 갓바위에 오르기 위한 데크로드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가 되었다.
깎아지른듯한 바위의 날카로움을 조심스럽게 잡고 갓바위에 올라가 본다. 날카로움은 같은 강하기로 누를 수가 없다. 오직 부드러움으로 감싸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울진의 후포 등기산 스카이워크를 걸어보고 갓바위에 올라보니 조금은 성찰하는 마음이 생긴다. 우리 자신의 삶, 타인의 삶을 배려함으로써 우리는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