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 미곡창고가 서천군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변신
세상에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 과거나 현재에도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들에는 공통점들이 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이 있어야 하며 그 실체를 잘 알 수 없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 가치가 있다고 믿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렇게 유용하지 않다. 즉 그걸 가지고 직접적으로 무얼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가치를 그냥 홀딩하고 있을 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는 않는다.
귀여운 캐릭터가 만들어져 있는 장항은 1920년대부터 대일 곡물 출항 항구로서 역할이 시작된 후 1931년 장항선 철도 개통을 계기로 더욱 비중이 커지면서 세워진 미곡 보관 창고 건물은 독특한 형식의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세우고 그 상부에 도리 방향으로 상호 연결된 목조 트러스로 정교한 지붕틀을 가설해두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이었던 장항 미곡창고는 현재 서천군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이 되고 있다. 상시 활용을 위해 플로리스트, 유리공예, 포크아트, 마크라메, 서예, 문인화, 서양화, 유화 그리기, 전통매듭 반등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의 사람들은 CJ대한통운을 택배업을 하는 대표적인 회사로 알고 있지만 이 회사의 전신을 따라 올라가면 90여 년 전에 일제가 설립한 조선 미곡창고 주식회사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안정된 물가 속에 풍요를 누려왔다. 그 기반에는 세계화가 있었다.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하는 각종 곡물과 물건들은 물가 걱정을 안 하게 해 주었다. 이제 그런 풍요는 없을 듯하다. 일제가 강제로 한반도를 병합하고 1920년대 이 땅에서 생산된 쌀을 무차별적으로 일본으로 퍼 날랐다. 조선의 백성은 굶주렸지만 일본 농가는 폭락된 쌀값으로 인해 불만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수출되는 조선산 쌀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때 설립된 회사가 조선 미곡창고 주식회사다. 이 회사는 장항 미곡창고 같은 곳에 쌀도 저장했지만 화물업도 같이 병행했었다. 도박시장과 같은 선물거래(先物去來) 미두 시장도 이때 같이 운영된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허상을 쫓아가던 조선인들의 돈을 일본이 흡수하게 한 것도 미두 시장이다. 해방 후 1962년 조선운송에 합병된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는 1968년 동아그룹에 넘어갔는데 이름을 대한통운으로 바꾸었다.
다양한 강연뿐만 아니라 여러 배움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서천군문화예술창작 공관은 공휴일과 일요일, 월요일에는 휴관이다.
유리는 삼국시대에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 귀중품의 역할을 했다. 장신구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식기(儀式器)와 사리(舍利) 장치로서도 한몫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비싸던 유리는 지금은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면 유리공예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다.
납 등을 사용하기 때문에 앞치마, 팔토시, 안전장갑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해야 한다. 유리공예는 그렇게 어렵지가 않은데 2시간이면 준비된 재료를 가지고 간단한 것들을 만들어볼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 가치의 본질을 알면 투자에 실패는 확실히 줄어든다.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은 본질은 숨겨둔 채 장황한 가치에 대해 늘어놓기만 한다. 가장 확실한 가치는 자신이 직접 해볼 수 있고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것에 있다. 선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주는 데 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확실한 투자를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유리공예를 배우는 이곳의 클래스는 유리 공예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한 걸음씩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확실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적으로 행복하도록 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욕구 충족 시스템은 타인들을 탈인간화를 초래하게 되는데 단시간으로 보았을 때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류 전체로서의 우리는 결코 장기적으로 행복해질 수가 없다.